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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17 21:07 수정 : 2009.09.17 21:07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9월 초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30개 회원국의 아동복지 실태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한국의 아이들은 학업성취도에서 2위를 차지하였고, 일부 언론은 한국이 교육복지 선진국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의 성공 비결을 알아내려는 시도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국 아동복지의 성과가 있다면, 그건 가족의 힘 덕택으로 돌려야 한다. 가령 아동의 학업성취도는 학교와 가정에서 결정될 터이나, 우리의 학교가 죽어 있는 현실에서는 가족이 큰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 각 나라의 부모 인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학교의 질을 나타내는 어떤 지표에서도 평균에서 크게 떨어지는 점수를 얻었다. 하지만 부모의 높은 교육적 관심은 뒤처진 학교교육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자녀가 10살 때 과학책을 자주 읽었다고 응답한 부모 비율에서 한국은 단연 앞섰다.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지탱된 데는 우리 가정의 생활수준이 좋아진 덕도 컸다는 점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 아이들은 교육복지도 높았지만, 소득수준, 빈곤아동 비율 등 가족의 경제적 복지수준도 평균보다 높았다.

남들이 볼 때는 우리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막을 아는 처지에선 과연 그럴까 싶은 구석이 많다. 먼저 우리 가족의 경제적 형편이 만만치 않다. 우리의 중산층이 벌어들이는 소득은 잘해야 제자리걸음인데, 천정부지로 오르는 교육비는 온전히 부모 부담이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커지다 보니, 교육열 높은 한국 부모들은 아이 낳기를 멈추는 선택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남은 아이들이 행복한지도 의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선진국 중에서도 최상위의 학업성취를 보이지만, 학업 동기와 흥미, 자신감에서는 평균보다 많이 떨어진다는 점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결국 재미도 없는 공부를 억지로 한다는 얘기인데, 그런 아이들의 복지수준을 높다고 할 수 있을까?

빈곤아동 문제는 더 급하다. 서구에선 아동이 빈곤층의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는 한부모 가족이 늘어난 사정과 관련이 깊다. 최고의 아동빈곤 국가인 미국에서는 친부모 모두와 같이 사는 아이들이 6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특히 눈에 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안정된 가족이 아동빈곤을 막는 방파제 구실을 하였지만, 이젠 그것도 옛말이 되고 있다. 연초에 발표된 보건복지가족부 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아동 중에 한부모와 사는 아이들은 5% 정도이지만 빈곤아동 중에서는 52%가 한부모와 살고 있다. 더욱이 가난과 가족 해체의 악순환이 일찍부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앗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빈곤아동이 언어와 인지발달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우려스러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 아이들이 그간 싼거리 교육으로도 놀라운 성취를 거둔 데는 ‘가족의 희생’이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사회와 정부가 나서지 않은 채로 이런 행운이 계속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양육 부담에 지친 가족을 대신하여 정부가 아동에 대한 복지투자를 맡아야 할 때이다. 당장 드는 비용을 아끼려다, 장래에 사회적 대가를 크게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동 투자는 예방적이고 선제적일수록 좋다는 점도 중요하다. 아이들 일생의 기초가 놓이는 생후 첫 6년, 이 결정적 시기에 복지지출을 늘려야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이 조기개입 전략은 빈곤아동이 가난의 대물림 고리를 끊고 나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한국이 진짜 아동복지 선진국이 될 수 있을지, 바로 이 6년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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