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18 21:43
수정 : 2009.09.1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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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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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봄,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되었을 때 나는 외국에 있었다. 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은 자주 접했지만 인간의 미세한 감정·감각과 관련된 내용은 그저 궁금해하며 넘어가기도 했다. 이 영화 제목도 그런 것이었다. 추억이라는 말은 어떤 대상을 정 깊게 기억함을 의미한다고 대충 이해하고 있던 나에게, ‘살인’과 ‘추억’의 조합은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후에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도 제목에서 두 단어를 조합한 사람의 깊은 뜻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어쨌거나 화제작답게 영화는 탁월했고, 영화에서 그려진 상황은 오금이 저릴 정도의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 누군가는 연쇄살인에 대해, 혹은 그것이 일어나던 시절과 상황에 대해, 애착 어린 추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영화 제목이 머릿속을 휘젓게 된 것은 최근 이와 마찬가지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새로운 조합이 떠오르면서였다. 이름하여 ‘사찰의 추억.’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재야 정치인 사찰, 학원 사찰 같은, 정치적 목적의 민간인 사찰이 일상적 삶의 일부였다. 사찰하는 이와 사찰당하는 이가 매일 접촉하다 보니 모종의 친분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던가. 어쨌든 내가 아는 어느 유명한 분은 사기꾼 비슷한 인간이 괴롭히자 자기를 사찰하던 형사에게 도움을 받아 그 상황을 넘겼다니까. 그럴망정 그분이 일거수일투족을 사찰당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기억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누군가의 사유물로 여겨지던 그 시절을 애틋하게 동경하며 추억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는 것 같다. 사찰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찰하고자 하는 사람들 말이다. 작년 올해 언제부터인가 주변 사람 몇몇이 “사찰성 전화를 받은 것 같다”며 불쾌해하곤 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배반한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제기한 기무사 소속 군인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필두로 해서 불법 사찰의 혐의가 짙은 사건들이 잇따라 보도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박원순 변호사처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신망 높은 인물의 하나이면서도 온건하고 합리적인 분이 자신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언론에 직접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가로 그는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국정원의 고발을 당한 상태에 있다. 옛날 국가원수 모독죄 명목의 재판이 남발되는 것을 볼 때도 막막했지만, 민주주의의 갑작스러운 후퇴를 보는 심정은 그때와도 다르다. 그가 눈물 흘리며 기자회견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고통스럽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기무사(옛 보안사)나 국정원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그들이 자행했던 각종 국가폭력적 행위와 불법적 사찰 행위에 대해 규명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과거사 규명작업을 거쳤음에도 최근 다시 민간인에 대한 사찰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진행한 자체조사와 사과·반성이 헛일·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사찰 의혹은 아직 의혹으로 머무르고 있지만, 실제로 사찰이 행해졌더라도 이것이 기무사나 국정원이란 조직 전체의 방침을 따른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자신이 소속된 부서의 조직 이해나 출세의지에 집착하는 개인들의 실수일 것이다. 군 정보기관이나 국가 정보기관이 일반 시민이나 시민운동가를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기관의 입장에서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엄정한 자체조사를 통해 이런 일이 실제로 자행되었는지 규명할 것이지 국가의 명예를 들먹이면서 존경받는 사회지도자를 괴롭힐 일이 아니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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