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0.06 22:28
수정 : 2009.10.0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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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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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가 시작되었다. 의원들은 제대로 된 사회를 위해 열심일 것이고 관계 부처는 충실한 답변에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각 정당의 입장이 반영되는 상황에서 국정감사의 부분적인 사안만으로 우리 사회가 살기 좋아질 것으로 믿는 이들은 적다.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사안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다.
일전에 나이 든 저항시인이 총리 후보자 청문회 때 보인 민주당의 공격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과거와는 달리 얼마나 길들여져 순진해졌는지를 나타낼 뿐이다. 종교인에게는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듯이 정치집단이 추구하는 것은 정권을 잡아 사회에 자신들의 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의 집단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하는 정치인들이 여야 입장 변화에 따라 견해를 바꾸는 것은 그리 잘못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상황이 변했음에도 동일한 주장을 하는 정치인이라면 학자나 종교인이 적당하다.
지금은 여당인 한나라당이 미국 쇠고기 수입 건에 대하여 야당 시절과 너무도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내가 그것을 전혀 탓할 생각이 없는 것도 그런 것이 정치집단이라는 것을 알 만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입장 변화에서 관련 국제학회지나 학회에서 단 한 번도 발표해 본 적이 없는 이름뿐인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변명하는 모습이 초라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제대로 들었다면 차라리 시인은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질타함과 동시에 고위 공무원 위장전입, 미국 쇠고기 수입 조건, 재정적자 증가율 등에서 보인 한나라당의 재빠른 변신에 대해서도 일갈했어야 한다.
그러면 그 순진한 시인이 차라리 언성을 높여야 할 대상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국내의 고삐 풀린 언론이다. 언론사의 성향은 있을지언정 언론의 정체성은 객관적 시각과 비판정신이고, 그것을 잃은 언론은 쓰레기일 뿐이다. 그런데 국내 많은 언론사는 정권이 바뀜에 따라 마치 정치인인 양 현 정권에 맞추어 자신들의 견해를 정반대로 바꿨다. 특정 정권이나 정당의 입장을 선전하는 기관지처럼 전락하여 일반인을 호도하며 사회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의 세종시 관련 질문을 빼달라는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인 언론의 모습에서 어디 사회를 위한 비판의식을 느낄 수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 중에서도 이처럼 비판정신 없이 권력화된 언론이 그 핵심에 있음을 알고 변화를 요구하다 결국 스스로 옥쇄했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 순진했다면 대통령은 순수했다. 역사적으로 순수한 이들의 희생으로 사회는 발전해 왔으나 순진한 이들은 정치집단에 이용당하다가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갔음을 안다.
한편, 사랑과 배려를 말해야 할 신부님은 공공 매체를 통해 다른 이의 발언을 개 짖는 소리라고 매도했다. 그가 종교인이 아니거나 사적인 언급이었다면 몰라도 사람 말을 개소리로 듣는다는 신부님의 발언이 공공연히 매체를 타고 또 이런 발언을 교계 차원에서 문제삼지 않는 것은 종교인의 정체성을 망각한 추한 모습이자 동시에 자체 정화도 못하는 서글픈 종교계의 모습이다. 사회 유명인들이 물러나야 할 때도 모르고 정치와 유착된 언론을 지적하기는커녕 과거의 후광만으로 일반인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사여구만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진정 국정감사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정치권력에 아부하며 스스로 권력을 키우는 정체성을 잃은 언론이자, 이들 언론이 휘두르는 폭력성이다. 사회의 퇴행을 부르는 그 성역은 언제 개선될 것인가.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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