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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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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배울 때 ‘나보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공자 스스로 호학(好學)을 자부하는 대목 앞에서 고개가 갸웃거려지곤 했다. 자기를 낮추는 겸양의 원칙과 어긋나 보였기 때문이다. ‘호학’이란 것이 수학 시험에 백점 맞았다는 뜻이 아니고 또 글공부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랑이 아니라, 내내 배움에 목말라하는 뜻임을 알았을 때에야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논어> 첫 장은 “배우고 또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하랴”인데 여기 배움도 강요로서의 ‘지식 쌓기’가 아님이 분명하다. 제 좋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고서야 기쁨이 터져 나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면 ‘좋아한다’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호(好) 자는 ‘여성(女)이 자식(子)을 끌어안은 모양’을 형상한 것이다. 젊은 여성이 첫아기를 낳아 어르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모습은 없다고 여겼던 셈이다. 어미가 아기를 대하듯 사심 없이 한결같이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 좋아함이다. 곧 호학이란 평생토록 모르는 것을 배워 나가기를 일상화하는 삶의 태도를 이른다. 그제야 평범하고 심드렁하던 하루하루는 새롭고 설레는 삶으로 울렁거리며 다가올 터다. 실로 공자의 공자다움은 호학, 이것밖에 없을 것 같다. 흥미롭게도 공자는 제 인생을 회상하면서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섰다”고 하였다. ‘섰다’(立)란 전문가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자도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까지 15년의 세월을 매진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다시 그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노벨상 우울증’이 온 나라를 덮친다. 언론들은 노벨상의 축복이 이 땅에 내리지 않는 이유 꼽기를 해마다 반복한다. 연구열의 문제, 번역의 문제,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하는 풍토 등이 자주 손꼽히는 이유들이다. 한데 공자에게 그 원인을 묻는다면, 아마 제 좋아하는 공부를 평생토록 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라고 답하리라. 또 그 대책을 묻는다면 15년을 두고 제자리에서 문제에 파고들기를 권할 것 같다. 활을 들고 날아가는 새를 쫓아 이 산 저 산을 헤매기보다, 자기 주변에 나무를 심다 보면 세월이 흐를수록 숲이 깊어져 그렇게 바라던 새들이(노벨상이라는 파랑새조차) 날아와 깃들일 것이라고. 이 대목에서 “서기(立)를 걱정해야지 지위(位)는 염려하지 말라”는 <논어> 구절도 떠오른다. 이건 자기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여 전문가로 서게 되면 자리가 생기리라는 전망을 뜻한다. 물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곧 남이 알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 않다면 화가 고흐는 어찌 생전에 한 점의 그림도 못 팔고 궁핍에 찌들다 죽었겠는가. 제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한다는 것은, 곧 가난을 각오하면서 살겠다는 결의를 전제로 한다. 여기서 삶이 갈라진다. 편안하고 배부른 삶을 위해 ‘남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허기져 고꾸라지는 수가 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인지의 갈림길 말이다. 단언컨대 전자를 택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는 노벨상이 없다. 그러니까 일제히 한꺼번에 시험을 치르고, 주어진 시험지 푸는 능력을 잣대로 학교를 한 줄로 세워 순서를 정하는 곳에서는 노벨상이 없다는 말이다. 서로 다른 것을 용인하지 않고, 다른 것을 두고 틀렸다고 하는 경망스런 사회에도 노벨상은 없다.
노벨상은 제 좋아하는 일에 평생을 매진하는, 다양하고 독특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 걸려드는 로또다. 노벨상은 집착에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사회에 걸려드는 행운일 뿐이다. 노자도 말한 바 있다. “집착하면 도리어 잃는다”(執者失之)라고.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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