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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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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이 북-일 교섭 재개를 향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정권교체 후 처음으로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애초 방침을 변경해서 북한 화물검사특별조치법안을 제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를 실행하기 위해, 전임 아소 정권 때부터 추진되었던 것으로, 민주당도 총선거 매니페스토(정권공약)에서는 입법화 추진을 내걸고 있었다. 집권 이후 민주당 신정권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던 가운데, 이전 자민당 정권과는 달리 “압력”보다는 “대화”를 중시한다는 자세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도 하토야마 총리의 유화적인 발언이 이목을 끌었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 내용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은 하토야마 총리는 “북-일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김정일 총서기의 의향도 전해 들었다. 그 말을 신뢰하고 싶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또한 “양자회담이 결코 6자회담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원자바오 총리의 발언에 동의한다. 북한에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단계로서의 양자회담은 의의가 있다”라는 발언은 북-미 양자회담의 용인뿐만 아니라, 북-일 양자 접촉을 향한 포석으로도 해석되었다. 북-일 간의 화답은 민주당 정권 출범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하토야마 내각이 성립된 다음날인 9월17일, 북한 <평양방송> 논설은 “북·일 양국이 평양선언을 존중하고, 그를 준수 이행해 간다면 양국 간의 현안은 지체 없이 해결되고 관계 정상화를 향한 긍정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하토야마 총리는 9월24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평양선언에 입각해서 납치, 핵, 미사일 등 현안을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성의를 가지고 청산함으로써 국교 정상화를 도모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면서, “북한이 전향적이고 성의 있는 행동을 취한다면 일본으로서도 전향적으로 대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작년에 합의한 납치문제 재조사의 “개시”가 “북-일 관계 진전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 지적하면서 거듭 북한의 구체적이고 성의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작년 8월 후쿠다 정권 말기에 북·일 양측은 납치문제 재조사와 일본의 부분적 제재 해제를 동시에 실시하고 북-일 교섭을 재개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직후 후쿠다 총리가 갑자기 사임하고 후임 아소 총리가 강경 자세로 선회함으로써 합의 실행이 무산된 것이다. 기존 합의를 부활시켜 재가동하는 것은 외교 교섭상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북한이 재조사의 결과로 제시할 “성과”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작년 후쿠다 총리가 마지막까지 합의에 주저하고 일본 정부 내에 신중론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만약 당시부터 추측된 대로, 북한이 사망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추가 정보와 더불어, 새로운 납치 생존자의 존재와 귀환까지 포함한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한다면, 일본 민주당 정권으로서도 여론에 대해 “외교적 성과”를 주장하면서 북-일 교섭을 본격화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북-일 접촉에서도 이것이 최대의 쟁점임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출범 한 달이 지난 민주당 정권은 예상보다는 안정된 모습으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장기집권 여부를 가늠할 내년 여름의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해 아동수당, 농가 직접보상 등 지지기반 확보를 위한 정책도 잇달아 시행 태세에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일본 여론의 관심이 큰 납치 문제에 있어 “진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국내 정치적으로도 큰 자산이 된다. 북-미 교섭의 동향을 보면서, 일본 민주당 정권도 적극적인 대북정책의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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