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0.23 18:24
수정 : 2009.10.2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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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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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일본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참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미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 한반도 평화방안으로 4대국 보장론(교차승인론)을 제시했다. 또한 일본이 경제적 강자로서 동아시아 정세 안정을 위해 중요한 위치에 있음도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논의기구로서 6자회담이라는 형식은 구체적으로는 1990년 동·서독 통일 당시의 2+4 구성을 많이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2는 동·서독 양국을, 4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2차 대전의 승전국들을 말한다. 독일은 패전국이었고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졌기 때문에, 종전 후 4대 승전국이 독일을 분할 점령했고 통일에 이르기까지 동·서독에 각각 군대를 주둔시켰다. ‘전범국가’로 규정되어 분단되었던 독일이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 그중에서도 승전국들의 동의가 필수적이었다. 두 독일은 ‘둘 더하기 넷’ 회담을 통해 통일에 합의했고 유럽에서의 전후(戰後) 관계는 정리되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논의에서 일본은 지위가 다르다. 일본은 제국주의 지배와 2차 대전으로 한반도 분단에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나라인데다 패전국이고 전범국이었으므로, 4대 승전국이 독일에 가졌던 것 같은 ‘지분’이나 ‘발언권’을 한반도에 대해 가지기에는 결격사유가 너무 컸다. 소련을 이어받은 러시아가 승전국의 일원이었고 한반도 분단의 한 축이었던 것, 그리고 중국이 휴전협정 조인의 한 당사자였던 것을 근거로 하여 한반도 문제에 발언권을 가진다고 자처할 수 있는 것과 전혀 다른 형편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의 해결을 통해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촉진하는 과정에 일본도 참여한다는 것은 이 나라가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강국이면서 북한과 수교하지 않은 상태임을 고려하여 관련국들이 배려해 준 덕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일본은 북핵 위기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지속시키고 자국 일부 계층의 이익을 챙길 만한 쟁점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를 언론 전면에 내세워 일본 국민들의 대북 감정을 악화시켜 왔던 것이 대표적 예다. 일본은 역사적 관점에서 한반도 구성원들 전체에 대해 가해자인데도, 현실에서는 납북자 문제를 내세워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인 양 처신했다. 또 하나, 북한 핵실험을 이유로 자국의 재무장론을 강화했던 것도 일본 보수의 역할이었다. 이 상황에서는 일본의 평화운동 세력도 동아시아 정세에 관해 별 역할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제 일본도 온전한 의미의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동아시아인들의 화해와 연대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을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진정한 일원이 되게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아직 전후체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새 질서가 가능해진다. 유럽 통합이 빠른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냉전 극복은 더 절실하게 요청된다. 일본도 이제 대북한 관계를 위해서는 납북자 문제 외의 다른 논의 틀(‘프레임’)을 내놓아야 한다.
내년이면 한-일 합병 100주년이다.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와 전쟁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동아시아인들의 상호관계에서 과거사를 정리할 의사가 있다면 무엇보다 남북한 화해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선 할 일은 북한 주민들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6자회담이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것이다. 일본의 평화운동 세력도 여기에서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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