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0.27 21:13
수정 : 2009.10.2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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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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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발전이나 국가 경쟁력을 생각해 볼 때 개발 연구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개발 연구에는 많은 연구비가 들고 시행착오가 많아 대학이나 정부 연구소는 대부분 국가 연구비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비를 줄 연구과제의 선정과 그 집행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 부처의 역할은 개발 연구의 활성화와 가시화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점에서 정부 부처의 특성에 따라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이번 국정감사 기간 중에 한 국회의원이 녹용의 원산지와 품종을 구별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 과제에 대해 부실 연구로 지적하고 일부 연구비의 회수를 촉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부실 연구도 아니고 연구비를 물어낼 상황도 아니다. 실제로는 식약청이 책임질 일을 연구자에게 떠넘긴 것이었다. 식약청이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이미 진행되고 있던 녹용 관련 법적 소송과 관련이 있다. 연구자의 결과보고서를 본 식약청은 사소한 내용을 근거로 보완을 요구해서 연구 기간이 연장됐고 이 결과 특정한 결론이 도출됐다. 또 식약청은 해당 연구가 종료되어 연구비를 모두 지급, 완료했는데도 그 뒤 연구가 여전히 지체되고 있다면서 근거 없는 공문도 발송했다.
개발 연구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며, 연구를 통해 제시된 것은 기대한 결과가 아닐지라도 그 자체로 과학 연구의 결과이다. 따라서 원하는 연구 결과가 없다고 실패한 연구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을 모르는 망언이다. 결국 관리부처의 횡포가 개발 연구의 왜곡과 침해를 가져온 것이고, 과학에 대한 무지한 시각이 성실한 연구자를 공개적으로 매도한 셈이 되었다.
과거에도 식약청은 체결된 연구계획서에 따라 연구자가 요청한 연구비 지급을 자체 지침과 어긋난다면서 지급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보고서에 해당 부분의 연구 결과가 없다면서 부실 연구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연구 지체금을 부과한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사전에 연구계획서를 평가했던 식약청은 자체 지침과 어긋난 연구계획서로 연구협약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결국 체결된 연구계획서에 따라 성실히 연구 진행한 연구자에게 정부가 연구비도 주지 않고 연구 결과를 요구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황당한 상황이 되었다. 더욱이 당시 식약청은 연구비 회수 조처를 해당자에게 통보하지도 않아 이의신청 기회마저 박탈한 무법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식약청은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반 자체 사업을 외부 연구자에게 위탁하는 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지만 내면적으로는 관련 사안에 대한 전문성 부족과 더불어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외부 연구자에 전가하는 행태이다. 관련 업체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이번 녹용 연구에서 보듯이 소송 등의 민감한 사안에는 유형, 무형의 압력을 행사한다. 이때 연구자들은 시끄러워지는 것과 장차 연구비 신청에 있을 불이익이 두려워 적당히 타협하며 양보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많은 연구자들이 왜 식약청 연구비 신청을 다른 부처에 비해 꺼리는지 알아야 한다.
다른 부처에 비해 식약청에서 이런 행태가 잦은 이유는 식약청이 인허가 등 이해관계가 얽힌 평가 작업을 해야 하는 부처라는 점이다. 여러 집단 간의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식약청의 특성 때문에 많은 민원에 시달려야 하는 관련 공무원들의 입장도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식약청 연구비 관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국가 경쟁력과 학문 연구의 발전을 고려할 때 식약청은 부처의 특성을 고려해 자체 일반 사업을 강화하고 연구개발 사업은 다른 연구부처로 이관해야 한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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