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0.29 22:16
수정 : 2009.10.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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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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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야 설이 구구한 유의 것이지만, 미국 경제학계에 3대 천재가 있다 한다. 하버드대 총장과 재무장관을 지내고 지금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경제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로런스 서머스,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서 미국식 자유방임 시장주의를 비판하고 공공의료보험 도입을 주장한 노벨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하버드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29살에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가 되었고 최근에는 새로운 저서 <커먼 웰스>(Common Wealth)를 통해 지구공동체가 요구하는 세계시민의 지성과 덕목을 보여준 제프리 삭스가 그들이다. 제프리 삭스는 여행을 통해 아프리카의 참상을 본 후 세계 빈곤과 국제원조에 큰 관심을 쏟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유엔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정력적으로 활동하였고, 지금도 밀레니엄 개발목표 자문역을 맡고 있다.
밀레니엄 개발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s)는 2000년 세계의 지도자들이 선언하고, 유엔 가입국 191곳이 만장일치로 합의한 지구촌 빈곤퇴치 계획이다. 하루 소득이 1달러가 안 되는 극빈과 기아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모든 아동이 초등교육을 받도록 하며, 에이즈, 말라리아의 확산을 막는 것 등 여덟 가지의 목표를 내세웠다. 제프리 삭스에 따르면, 10억의 극빈층을 구제하는 데에 부자나라들 연간소득의 1%가 채 들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이들 부유한 원조국가들이 매년 국민총생산(GNP)의 0.7%를 내기로 약속한 셈법도 여기서 나왔다. 이들 부국의 소득이 1년에 약 35조달러니 그 0.7%는 2450억달러가 된다. 그런데 약속과는 달리 부국들의 실제 원조액은 약 1000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부족한 1450억달러 때문에 놓치는 생명이 너무도 많다.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300만명이 말라리아로 죽는다. 그런데 살충제 처리가 된 모기장만으로도 대다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3억개 정도의 모기장이 필요한데 5년간 쓸 수 있는 모기장이 개당 5달러라니 매년 3억달러씩 꾸준히 지원하면 되는 셈이다. 원조만 충분하다면 보건 외에도 교육, 농업, 식수와 전기시설 투자로 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국제 개발원조의 성과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1950년대 한국은 아프리카 나라들과 별 차이가 없는 극빈국이었다. 6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매년 1인당 약 65달러의 원조를 받았고, 같은 시기 아프리카의 가나가 받은 원조는 약 2달러였다. 결국 1960년 한국의 곡물 수확량은 헥타르(㏊)당 3t으로 늘었지만, 가나는 0.8t에 머물렀다. 어디 이뿐이랴?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공중보건과 대중교육 투자를 늘려 산업화의 기초를 놓은 한국 현대사를 국제원조를 빼놓고 설명할 수 있을까?
10월17일 세계빈곤퇴치의 날이 잊혀질 즈음, 가장 성공적인 원조졸업국 한국의 이기주의가 국제사회의 화젯거리로 되었다. 미국의 세계개발센터가 부유한 국가 22곳이 벌인 저개발국 지원활동을 비교한 결과 한국이 꼴찌를 차지하였다. 빈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인색하여 원조에는 국민소득의 0.1%도 쓰지 않았다. 가난한 나라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데에서도 야박하여, 불법체류 단속에만 열심이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속물적 근성은 새 정부 들어 노골화되고 있다. 일선 외교관의 푸념이 떠오른다. “제발 ‘자원’ 외교라는 말만이라도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나라 도와주면서 인도주의를 내세우지는 못할망정, 우리 참뜻은 당신네 자원으로 잇속 챙기는 데 있다고 떠드는 식의 외교, 이게 제정신으로 할 짓입니까?”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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