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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01 21:25 수정 : 2009.11.01 21:25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유효적 불법’ 또는 ‘불법적 유효’라는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판결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성문헌법’ 국가에서 자의로 ‘관습헌법’ 논리를 창안할 때처럼 계속되는 헌재의 논리모순은 한국과 외국의 헌법학자와 정치학자들을 거듭 황당하게 만들고 있다. ‘불법성’과 ‘유효성’ 사이의 선택을 둘러싼 국가적 논란도 더욱 키워 놓고 있다.

법적 판결은 무엇보다 ‘원인 요소’와 ‘결과 판정’ 사이의 법리적 일관성과 일치성을 생명으로 한다. 그 일관성·일치성이 제공하는 판명성·합리성·설득력이야말로 법의 존재 이유인 동시에, 법이 신뢰받는 최소요건이다. “과정은 불법이나 효력은 유효”하다거나 “행동은 불법이나 결과는 합법”이라는 초법적 논리로 일치성이 붕괴될 때 법과 법관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법관들이 법의 존재 이유와 법리를 앞서 파괴하는, 법치의 파괴자가 되기 때문이다.

원인 행위의 불법성에도 행동 결과의 유효성이 보장받을 때, 합법과 불법의 기준이 소멸됨으로써 무엇보다 법치와 법치주의가 무너진다. 사회나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논리성과 합리성 역시 근저부터 무너진다. 불법 행위로 취득한 이익과 지위가 합법적이며 유효한데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행동의 외적 불법성이 법적으로 보장받는다면 사회는 오직 인간의 내면 양심에 기대야만 하나 인간의 내면은 더 많은 불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일찍이 다산은 지배층의 탈·불법을 목도하며 ‘목민’을 “법에 근거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올해 법의 날에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법질서 확립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나라의 윤리 수준이 국가경쟁력의 주요 요소”라고 언명하였다. 그러나 지금 시중에는 현 정부 고위직에 오르려면 4당5락(위법·불법 4관왕은 임명이 되지만, 5관왕은 곤란하지 않으냐)이니, 3락4당(3관왕은 너무 깨끗하여 동료로 삼기 어려우니 4관왕은 돼야 임명할 것 아니냐)이니 하는 법치 조롱 담론이 퍼지고 있다. 박원순 같은 사람은 너무 깨끗해서 등용될 수 없다는 시민 담론까지 돌고 있다. 우리의 국격, 법치는 이토록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지금 누가 정말 대통령이 언명한 법치와 윤리 수준을 후퇴시키나?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인가 4당5락의 고위직들인가 불법적 유효를 고안한 재판관들인가?

해법은 없는가? 궁극적으로는 도덕성을 갖춘 민주정부의 수립이지만, 우선적으로는 법원과 헌재가 민주주의와 법치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견제와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 특히 입법부와의 수평적 견제 못지않게 시민참여를 통한 수직적 통제가 필수적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의회와 시민사회가 반드시 재론해야 하는 이유이다. 중기적으로는 법원 및 헌재 구성을 혁신하여, 좁은 법률 지식만을 갖춘 법률가들을 넘어 민주적 소양과 책임의식, 사회 현상에 대한 넓은 교양 지식을 갖춘 인사들로 구성해야 한다. 21세기 들어 법은 개인 삶과 국가·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들어와 있어, 법률가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다. 민주국가들이 법원 구성의 문을 크게 열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정치에 대한 법원·헌재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선출직과 대의기구의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인권을 제외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대의기구가 아닌 법원에 호소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에 반하는 처사도 드물다. 선출직 국민대표들은 군대·법원·재벌·로펌 … 누구에 대해서도 배타적 책임을 져선 안 된다. 국가와 국민과 헌법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따라서 정치의 문제를 법원과 헌재로 가져가는 ‘법원에 묻기’ ‘헌재에 묻기’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보루는 결국 시민과 대표들이기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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