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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12 19:19 수정 : 2009.11.12 19:19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지금으로부터 꼭 39년 전 오늘, 1970년 11월13일, 한 젊은이가 스스로 몸을 불살라 온 세상에 큰 빛을 던졌다. 전태일이라는 이 젊은이는 17살에 평화시장 미싱사로 들어와 일하면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근로환경에 시달리는 어린 공원들의 처지를 보고 이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 일생을 바치리라 결심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바보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노동현장 개선을 위해 활동하기도 하고, 노동청과 서울시 등에 찾아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노동자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을 뿐이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자 끝내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숨을 거둔 전태일이 요구했던 것은 “근로기준법을 지켜 달라”는 너무도 소박한 것이었다. 그의 일기장에는 “단 한 사람이라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구절이 쓰여 있었다. 전태일의 죽음은 지식인 사회에도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수많은 지식인과 대학생들이 노동현장에 뛰어들었으며 이는 1970년대에 민주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39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전태일과 여공들이 일하던 평화시장 자리는 이제 청계천이 흐르는 거리가 되었으며, 전태일 기념상과 전태일 거리가 만들어졌다. 노동자들의 처지도 많이 개선되었다. 노동운동 역시 이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세력으로서 시민권을 얻고 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많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 그리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중소 영세기업의 열악한 노동현실 역시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나 사용자의 노동운동에 대한 시선 역시 그다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노동조합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노동조합에 대해 각종 압박을 행사하고 있다. 현 정권하에서 벌써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관계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거나 감옥에 갔다. 보수신문들은 걸핏하면 노동조합의 지나친 전투성, 이기주의, 부패문제 등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기사와 논평을 싣고 있다. 지식인 사회 역시 노동조합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에게서 노동운동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일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고단하고 우리 사회 속에서 소수자로 소외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토록 많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노력에도, 보수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아 역사가 4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용산에서 여섯 명이나 되는 빈민이 죽었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며, 멀쩡히 살아 있는 4대강을 살린다고 온 나라 땅을 파헤쳐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게 되었다.

전태일 사건을 계기로 하여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던 지식인, 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그 후 정치가, 법조인, 고위 관료, 언론인, 교수, 시민운동가 등으로 변신하여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보수세력으로 변신하여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직접 탄압하거나 혹은 노동운동에 대해 지극히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39년 전의 가슴 뜨거웠던 청춘 시절을 기억하기는 할까? 전태일의 죽음을 가져온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전태일의 정신을 따라서 노동현실을 개선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생을 바치겠노라고 결심했던 그들의 열정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오늘 전태일 기념일을 맞아 우리 모두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일이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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