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19 21:51
수정 : 2009.11.1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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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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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낙태 시술을 하지 않겠다는 뜻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선언이 눈길을 끌었다. 그간 불법적인 낙태를 하면서 겪었을 고뇌의 깊이가 느껴졌고, 금전적인 유혹에서 벗어나 양심의 소리에 따르려는 진정성에 공감이 갔다. 하지만 낙태를 처벌해야 할 죄악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에는 저항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낙태 여부는 당사자에게 맡길 일이지 법으로 금지할 문제는 아니라는 게 내 본심이기 때문이다. 낙태가 권할 만한 것일 리 없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처지와 고통도 가벼이 보아 넘길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가 뿌리 뽑아야 할 것은 낙태가 아니라 낙태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회주의 루마니아의 낙태 금지 이야기는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벌인 야만 중 가장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루마니아가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인구가 늘어야 된다고 확신한 그는, 1966년 “배 속의 태아는 사회의 재산”이라고 선언한 후 낙태를 국가 안전을 해치는 범죄로 금지하였다. 이 강권적 조처로 하룻밤 사이에 출산율이 두 배로 증가하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기다린 것은 차우셰스쿠의 전횡과 비리로 얼룩진 루마니아 사회의 비참한 삶뿐이었다. 이들 세대는 학업과 직업 전선 모두에서 이전 세대보다 뒤떨어졌고, 많은 수가 범죄자로 전락하였다. 시카고대학의 스티븐 레빗 교수는 감당할 수 없는 출산을 강제할 때 생기는 사회적 비용을 이렇게 전하였다.
낙태 금지가 능사가 아닌 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낙태 이외에 다른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그 대표적인 집단이 미혼 임산부들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2007년 한국에서 미혼모가 출산한 아기는 8000명이 채 안 되어 전체 출산아의 1.6%였다. 아기 열 중 넷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다는 미국과 견줘 보면 아주 적은 수이다. 우리나라에서 미혼 출산이 이렇듯 적은 이유는 한국의 미혼 임신부 중 96%가 낙태를 선택한 데에 있다. 미혼모 당사자는 물론, 그 집안과 심지어 아기에게까지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넣는 우리의 비정함을 생각하면, 낙태로 내몰렸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낙태를 피한 미혼모 아기들에게 인생은 장밋빛이 아니다. 버려지는 아기의 40% 이상이 미혼모의 아기다. 또 미혼모의 70%가 아기를 입양기관에 맡긴다. 작년에 국외로 입양된 아이들 1250명 중 90%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른이 되어 돌아온 해외입양아들이 전하는 인종차별과 정체성 혼란의 경험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드물게 생모 밑에서 자라날 행운을 얻은 아기들도 가난과 차별로 가득 찬 삶을 맞이한다. 복지시설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미혼모 시설은 사회의 지원에서도 뒷순위여서 수도 적고 질도 좋지 못하다. 입양가정이 받는 수당이 10만원인데, 비빌 언덕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에게는 5만원을 주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편견은 미혼모를 돕는 시설과 제도까지 짓누르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어쩔 수 없어,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미혼모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만들어 권리 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창대한 내일을 만들어갈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고통 받는 흑인 대중의 저항 음악을 개척하고 레게 음악의 전설로 사라져간 밥 말리가 자메이카 슬럼가에서 전하던 절규가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여인이여, 울지 마세요. 모든 게 좋아질 거예요. 위대한 미래가 있으니 눈물을 닦아요.”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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