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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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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어도 고민은 깊어져, 가을의 한복판에 모였던 지인, 동료들도 이 문제가 탁상 위에 오르자 한마디씩 일가견을 피력했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장차 부부 두 명이 남편 쪽 부모와 부인 쪽 부모, 도합 네 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 앞에서는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늙어가는 사회’의 상상도가 중년들에게는 암울한 미래의 자화상처럼 다가온 것이다. 반면, 여성 취업의 증가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견해를 둘러싸고는 격론이 일었다.
한국의 출산율이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최신 보도를 보았다.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에서 한국은 1.22명으로 꼴찌에서 둘째 정도이며, 앞으로 40년 사이에 한국 인구가 400만명이 줄 것이라고 한다. 출산여성에게 주던 출산장려금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보도도 같이 등장했다.
여기서 생각나는 사람이 스웨덴의 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군나르-알바 뮈르달 부부이다. 남편인 경제학자 군나르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데 이어 아내 알바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더 유명해졌지만, 사실 뮈르달 부부의 첫 주저는 인구문제와 출산친화책에 관한 것이었다. 이 책 <인구문제의 위기>가 출판된 1934년 무렵, 스웨덴도 낮은 출산율로 고민하고 있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에 따라 핵가족화와 가족해체가 진전될 수밖에 없음을 간파한 이들은 출산이라는, 개인적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되던 문제를 공적이고 전사회적인 문제로 전환시켰고, 출산친화적인 사회를 만들 방안을 고민했다. 그래서 이들은 출산은 개별 여성이 하지만 자녀의 양육 책임은 사회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출산가정을 위해서는 현금지원보다 주택제공, 식품지원, 의료복지 지원 등 자라나는 아이가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끔 현물지원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여겼다. 여성이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하는 것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물론이다.
이 부부가 중시한 것은 결국 출산문제 성찰을 통해 사회의 가치관을 다시 정립하고 사회 전체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학교에서 경쟁만을 중시하는 “잘못된 개인주의”적 가치관 때문에 스웨덴인들이 비창의적이며 사회 분위기도 경직된다고 생각하고 학교에서는 경쟁을 부추기는 대신 민주적 가치관과 협동정신을 길러야 하며, 계급 격차를 없애는 데 교육이 기여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 부부의 구상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사회개혁 프로그램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유럽 사회가 전반적으로 출산율이 높지 않지만, 사회복지정책에서 앞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출산율은 그래도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높은 편이다. 가난한 흥부는 몇 십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자기 삶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않으면 자녀 출산의 용기를 선뜻 내지 못한다. 양육부담도 문제지만, 아이가 자라날 세상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도 출산을 망설이게 한다. 단적인 예로 초등학생들이 성적 때문에 밤 10시, 11시까지 학원에 다니도록 만드는 사회는 출산친화적일 수 없다. 20세기 전반 스웨덴 사회의 인구위기는 사회체제 전반의 개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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