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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26 22:44 수정 : 2009.11.26 22:44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상읽기

촛불시위로 주춤했던 이명박 정권의 불도저가 내는 굉음이 요란하다. 정부와 여당은 “내 갈 길 간다!”를 기치로 내걸고 일체의 문제제기, 비판, 반대에 대하여 무시, 통제, 억압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보수진영은 덮어놓고 정권을 옹호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보수파 법률가 두 사람의 대응이 눈에 띈다. 첫째는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중앙대 법대 이상돈 교수이다. 그는 검찰의 ‘피디수첩’ 수사나 국정원의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고, 용산참사는 법집행에서 ‘비례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미디어법은 ‘전경련 방송’을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였고,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결정은 “살아서 걸어다니는 미라” 같은 괴물을 남겼다고 맹공하였다. 또한 환경법 전문가로서 4대강 사업은 환경재앙을 초래할 사업으로 여러 법률을 위반하여 추진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이를 막기 위한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둘째는 이석연 법제처장이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 축소가 다루어진 국무회의에서 참석자 중 유일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검찰의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 거부를 비판했으며, 박 변호사에 대한 국정원의 소송은 법리적·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헌법 전문가로서 수입 쇠고기 장관고시는 위헌 소지가 있으며,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결정의 취지는 국회가 다시 논의해 절차적 하자를 치유하라는 것이라고 발언했고,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를 법령이 아니라 대통령훈령으로 설치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두 사람이 지적한 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법원칙과 상식에 대한 문제이다. 좌로부터건 우로부터건 정부와 체제에 대한 비판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제재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 시장논리에 따라 방송을 재편하는 것은 방송의 공영성을 제거할 것이기에 막아야 한다는 것, 어떠한 법제정·법집행이나 국책사업도 법원칙과 절차를 지키며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등은 중학교 사회교과서에도 나오는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니던가. 집권당이나 보수진영이 ‘수구꼴통’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고 G20 국가 수준의 보수가 되려면 이 두 법률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보수의 가치, 존재이유와 역할을 긍정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보수진영이 자신과 이명박 정권의 운명을 일체화하면서 정권의 딸랑이나 나팔수 노릇이나 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비근한 예로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에 대한 평가, 대통령 측근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 허용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한나라당은 집권 전후로 180도 다른 잣대를 사용하였다. 보수가 중시하는 가치는 도덕성, 준법성, 안정성, 일관성 등이다. 진정한 보수라면 이러한 가치에 따라 이명박 정권의 인사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보수진영은 침묵하거나 정권을 비호했다. 당파성에 눈멀고 정권이 줄 자리와 이익에 미혹되어 근본가치를 포기한 것이다. 부박(浮薄)하고 또 부박하다.

법원칙이고 뭐고 간에 아랑곳 않고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마구잡이로 공사를 밀어붙이는 식의 국정운영의 끝은 뻔하다. 인권과 절차의 의미를 망각하는 보수, 품격과 절제를 잃은 보수, 시장의 이름 아래 공공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보수의 미래 역시 뻔하다. 이명박 정권과 보수진영은 이 두 법률가를 ‘배신자’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그들이 강조하는 법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권력기반의 균열은 점점 더 속도를 내며 진행될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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