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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27 21:42 수정 : 2009.11.27 21:42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작가 김훈이 ‘막장’이라며 공개한 서재에는 사전들이 즐비했다. “광부의 장비가 곡괭이나 삽이듯 이 방에는 내 도구들만 있다”면서 특히 “각종 언어들, 영어·독일어·한문·국어사전과 우리나라의 여러 법전들”이 그 도구라고 소개하였다.

새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번역하면서 이전 번역본들의 오역을 많이 교정한 한문학자 김혈조도 그 공을 사전에 돌렸다. “오늘날은 초창기보다 각종 사전류·색인류 책들이 잘돼 있어 난해한 전고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고 하였다.

창작과 학문의 밑바탕에 사전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다.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잘 보여주는 것도 사전이다. 도올 김용옥이 ‘외국에 가면 그 나라 사전류부터 구입하기’를 권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일전 간행된 <친일인명사전>에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식민지는 왜곡된 땅이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지식인 프란츠 파농이 말했듯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이중성이 그 속성이다. 자아가 분열될 때라야만 생존이 가능한 곳이 식민지라는 뜻이다. 박정희가 사관학교 입학을 탄원한 글 속에서도 식민지의 ‘검은 피부’를 감추고 제국의 ‘하얀 가면’을 쓰고 싶은 욕망이 부끄럽게 드러났던 터였다.

인간의 삶이 입체적이라면, 글은 평면적인 데 불과하다. 어찌 글이 삶을 따라잡을 수 있으랴.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비난들을 요약하면 복잡하고 입체적인 삶을, 더욱이 중첩되고 왜곡된 식민지의 삶을 몇 글자로 어찌 표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리라. 속살은 사라지고 고작 껍질만 기록하는 또 다른 왜곡이 빚어지지 않느냐는 호소겠다.

하나 글과 말의 운명이 본시 그러하다. 노자가 “겉말이 속뜻을 담보하지 못한다”(名可名, 非常名)고 선언한 것도 말글의 본질적 한계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그 운명적 한계를 감안하면서 또 말과 글로써 꾸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한정 속에서 교과서가 집필되고, 언론 활동이 펼쳐지며, ‘말의 시장’인 정치가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 사람들의 왜곡된 삶을 다시 왜곡할 가능성이 있는 <친일인명사전>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다양한 사전! 당시 삶에 대한 여러 측면의 사전들을 편찬하는 일이다. 여기서 친일파로 등재된 조상을 두어 분통할 후손들에게 권하고 싶다. 일제 치하를 여러모로 조명하는 사전들을 만들기를. 곧 <친일인명사전>을 식민지시대를 결산한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잊으려 애썼던 그 시대를 새로 조명하는 시발점으로 삼기를 권하는 것이다. 다양성만이, 왜곡되었을 수 있는 <친일인명사전>의 주관성을 보완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전을 통해 식민지하의 일상적 욕망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면, 그리하여 당시엔 누구나 친일하고 싶었다는 점이 드러난다면, 거꾸로 미국식 영어를 일상화하려 애쓰는 오늘 후손들에게 ‘지금 너희는 또 친미파가 아니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그 질문에 ‘세계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우리의 답을 얻는다면 그들은 또 ‘우리도 그랬노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리라. 그럴 때 친일파라는 이름이 꼭 죄악만은 아니며, 운명처럼 덮친 식민지의 아픔임을 증거할 수 있으리라.


이미 발간된 사전은 증보되어야만 하고, 새로운 사전은 계속 나와야 한다. 사전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어디서 추진한다는 <친북인명사전>의 완정한 출간도 기대하는 바다.) 다양한 모자이크들이 모여 큰 그림이 만들어질 때 그제야 사실과 진실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짜 식민지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지 꼭 백년 만에.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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