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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04 20:13 수정 : 2009.12.04 20:13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지난달 14일 도쿄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정책 연설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첫 아시아 방문길이며, 4월의 프라하 연설과 6월의 카이로 연설에 이은 중대 연설이라는 사전 선전도 있어 일본에서도 관심이 매우 컸다. 일본 하토야마 총리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제창한 상황이라 미국이 어떤 비전을 제시할지에도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막상 그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평이다. 미국이 “태평양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시아에의 적극 관여를 천명했지만, 이를 미국의 경기대책과 고용전략과 노골적으로 연결해 설명하는 등 미국이 처한 다급한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동아시아 정상회담에 “좀더 공식적으로” 참가한다는 기대도 표명했지만, 미국이 제외된 지역협력 틀에 대한 견제적 성격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 연설의 주된 테마이기도 한 미-중 관계의 강화 확대를 축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냉전적 또는 신냉전적 대립구도를 어떻게 청산·극복하고 “안전보장 공동체”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오바마적’인 비전을 제시할 여유는 아직 없는 듯하다.

일본에서 특히 관심이 쏠린 것은 납치문제에 대한 언급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인접국들과 완전한 관계정상화를 하기 위한 조건으로 “납치 피해자의 행방에 관한 가족에의 완전한 해명(full accounting)”을 제시했다. 백악관이 제공한 일본어판에는 “전면적인 설명”으로 번역되어 있다. 미국의 대통령이 북-미 교섭을 눈앞에 두고 일본과 북한에 납치문제 “해결”에 대한 판단기준을 정식으로 ‘통고’한 모양새다.

고이즈미 정권 이래 일본 정부가 북-일 국교정상화의 조건으로 납치문제의 “해결”을 내건 이후, “해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커다란 쟁점이 되어왔다. 아베 정권이 “납치 희생자가 생존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전원 귀국을 실현”하는 것이 “해결”이라는 강경방침을 취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일본 정부의 대북정책을 크게 제약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설명”으로 기준을 크게 낮춘 것은 북-미 교섭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의사를 표시하고 그를 위해 북-일 교섭을 촉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 직후 일본 <아사히신문> 계열의 시사주간지가 ‘하토야마 방북설’을 보도해 이목을 끌었다. 집권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이 기사는 내용에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고 후속 보도도 없어 신빙성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 탄생 이후 북-일간 물밑접촉에 대한 추측과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최근 들어 정치가들의 관련 발언이 부쩍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간 아사히> 보도도 북-일 교섭에 비교적 호의적인 점을 고려하면 여론의 반응을 보기 위한 관측기구일 가능성도 작지 않다.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으로서도 조만간 북-일 교섭에 착수해야 할 정치적 요인은 많다. 북-미 교섭에 크게 뒤처지는 것이 외교적으로 불리한 것은 물론, 경기침체와 고용불안 등 악재가 계속되어 지지율이 하강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위해서도 납치문제의 ‘성과’는 매력적이다.

보즈워스 대표가 방북 후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자와 민주당 간사장이 대규모 의원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다. 오자와 간사장이 심혈을 기울이는 중-일 관계 강화가 초점이지만 북-일 교섭을 둘러싼 중-일 협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반도가 본격적인 외교의 계절에 접어들고 있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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