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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08 21:51 수정 : 2009.12.08 21:51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최근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활약이 종종 뉴스에 등장한다. 두 달 사이에 찾은 현장만도 100곳이 넘고, 370여건의 민원사항 중 200여건을 현장에서 처리했다고 한다. 심지어 148억원의 민원도 도지사와의 전화 한 통으로 해결했다고 하니 숙원이 해결된 서민들과 지역 주민들의 기쁨을 생각하면 흐뭇하다. 일부에서는 그런 행보를 여권 실세라서 그렇다며 정치적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재오 위원장의 열정과 진정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원이 현장에서 처리되고, 또 148억원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공공사업이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국민권익위원장의 열정 어린 활동이라고 단순히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이 무겁다. 전화 한 통으로 150억원에 가까운 도의 공공사업을 해결하기보다는 적법한 검토과정을 거치도록 요청하고, 해당 관공서의 부실이나 태만에 의한 지연이 있었다면 그것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했다. 또 기본 복지를 위한 초등학교 급식비마저 삭감하는 경기도에서 그 정도의 예산이 전화 한 통으로 예정되지 않았던 사업에 전용된다면 원래 하려던 다른 사업은 어떻게 될까. 해당 부서에서 여러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했던 공무원의 허탈감을 생각해 본다. 비단 권익위원장이 아니라 그 어떤 윗선의 조처라 해도 이런 행태는 공무원의 영혼을 갉아먹는 행위가 된다.

현장에서 처리될 정도의 민원이라면 당장 처리하는 것과 더불어 그동안 처리하지 않던 관공서의 행태를 개선해야 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반려된 민원이라면 단순히 높은 이가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냥 처리해서는 안 된다. 148억원의 공공사업을 도지사와의 전화 한 통으로 처리하는 모습은 전화를 주고받는 양쪽 모두 독재정권 시절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런 식의 민원처리는 아무리 진정성이 있다 하더라도 지적을 받아야 한다. 결국 장밋빛 국민권익위원장의 행보는 암울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힘없는 시골 할아버지가 와서 이야기해도 될 것이면 되어야 하고, 통치권자가 와도 안 될 것은 안 되는 사회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이시디(OECD) 국가이자 주요 20개국(G20)의 선진국 대열에 있다 한들 여전히 미개한 전근대적 사회에 불과하다.

이제 민주화 과정을 거친 많은 시민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식 구호가 횡행했던 예전 사회로부터 벗어나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사회를 기대한다. 얼마 전 농림수산식품부의 한 공무원은 캐나다 쇠고기 수입과 세계무역기구(WTO) 피소에 대비하여 소비자와 국제적 시각에서의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민간시찰단의 캐나다 파견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몇 주에 걸쳐 준비된 민간시찰단은 정부 윗선의 개입으로 출국 이틀 전에 해체되었고 이미 다녀온 정부 인원이 또다시 파견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전화 한 통의 사회에서 누가 소신과 열정을 지니고 임무를 수행할 것이며, 인맥과 학연과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겠는가.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서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불도저식의 황당한 행태가 여전히 능력으로 인정된다면 그 사회에서 청렴은 사라질 것이다. 통치권자가 법치를 말하면서 법으로 정한 세종시를 따르지 않겠다고 하고, 노동자의 보장된 권리를 무력으로 누르는 사회, 충분한 검토도 없이 의지만으로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심지어 작년 미국 쇠고기 수입에서처럼 과학적 사실마저 언론에 의한 일반인의 다수결로 정해지는 사회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인맥이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위치에서 소신껏 일을 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전화 한 통으로 처리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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