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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17 21:42 수정 : 2009.12.17 21:42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 사막 속 실내스키장 ‘스키 두바이’, 바다 속 인공섬 ‘팜 아일랜드’의 휘황함 뒤에 가려 있던 두바이의 실체가 드러났다. 일찍이 진보와 보수를 떠나 많은 전문가들은 두바이의 경제성장은 극심한 노동착취, 엄청난 차입투자, 대형 건설 중심의 성장 등을 기초로 이루어진 거품이라고 지적하며, 한국이 두바이를 모델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경선 후보 시절부터 두바이를 배우자고 역설했다. “두바이에서는 국왕이 기업인과 직접 휴대폰 통화 하더라”, “새만금을 동북아의 두바이로 육성하겠다”, “두바이는 사막을 파서 운하를 만든다” 등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자신이 추진하는 각종 정책을 정당화했다. 이 대통령은 두바이 실권자인 셰이크 무하마드와의 친분을 자랑하며 그의 지도력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고, 두바이에서 요직을 맡았던 데이비드 엘든을 대통령직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임명하였다.

사실 보수세력 대다수가 두바이에서 <아라비안나이트>의 요술램프를 찾을 수 있다는 환몽에 취해 있었다.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을 빌리자면, “이명박 정부 코드는 두바이처럼”이었다. 정·관·경제계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성지순례 하듯 두바이를 방문하고 두바이 찬가를 불러댔다. 보수언론은 두바이를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소재로 사용했다. 의회도 투표도 없이 몇몇 왕족이 권력, 부,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기업규제는 다 없애고 임금은 극저수준을 유지하고 노조도 노동쟁의도 금지하면서 성장을 추구하는 나라가 그렇게나 부러웠던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두바이를 배우자는 소리는 쑥 들어갔다. 그러나 두바이를 몰락으로 이끌었던 사상과 정책은 형태를 달리하여 재생산되고 있다. 친기업, 금융규제 철폐, 부자 감세·면세, 노동억압, 대규모 토목·건축공사 등을 통한 성장이라는 ‘흑(黑)마법’의 주문과 함께.

그런데 이 대통령의 마음속에는 또다른 꿈나라가 있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 “싱가포르의 팬”을 자처하며, 정부와 민간 모두 “싱가포르의 선진화된 경쟁력”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싱가포르의 이중언어 정책을 배워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오륀지” 파동으로 상징되는 영어몰입교육 소동으로 발현되었다. 한편 ‘엠비표 법치’도 싱가포르 수입품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으로 국가 지도자나 정부 비판자를 파산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박원순 변호사 등 비판자에 대한 정부의 소송은 여기서 배운 것이다. 정부는 도심 집회·시위를 금압하면서 시 외곽에는 ‘평화시위구역’이란 허울 좋은 장소를 만들었는데, 이 역시 싱가포르의 ‘스피커스 코너’를 모방한 것이다. 노동쟁의를 범죄시하고 노조와 노조 간부에게 ‘돈 폭탄’을 던지는 노동정책,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권고를 완전 무시하는 정부의 태도도 싱가포르를 닮았다.

이 대통령 외에도 집권세력 내에는 싱가포르 숭배자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들은 이상의 점 외에도 사실상의 일당독재, 소수 엘리트집단에 의한 권력 및 부의 독점과 세습, 강력한 언론 및 노동통제, 인구 대비 세계 최고의 사형집행률 등과 같은 싱가포르 현상까지도 우리나라에 실현하려는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이윤, 효율, 질서, 상명하복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권력자나 기업인에게는 두바이나 싱가포르가 ‘지상천국’일 것이다. 그러나 그 ‘천국’은 지속가능한 ‘천국’이 아니며, 한국 민주주의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당신들의 천국”이다. 또한 민주, 인권, 공정, 소통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그 ‘천국’은 ‘팔열(八熱)지옥’일 뿐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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