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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24 21:48 수정 : 2009.12.24 21:48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는 일대 장관이 벌어졌다. 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노조원 1만여명이 300여개의 천막을 치고 1박2일 동안 집회를 벌인 것이다.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한파가 몰아닥쳤지만 노조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들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반대, 복수노조 허용 등을 외치며 영하의 추위를 서로의 온기로 견디었다. 그래도 난방 없는 천막 맨바닥에서 새벽 한기를 견디기에는 너무도 매서운 추위였다. 한 여성 노조원은 추위를 견디다 못해 엄마를 부르며 목 놓아 울기도 했다.

이들의 요구 가운데는 노동 관련 사항뿐만 아니라 영리병원 도입 반대 등 전 국민의 복지 및 건강과 관련된 사항도 많았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은 이번 노조원들의 집회에 대해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언론들은 건전한 비판을 넘어서서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서슴없이 노동조합에 퍼부었다. 어떤 신문은 민주노총에 대해 노조가 아니라 반자유민주 반시장의 정치집단이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다른 신문은 노조 간부가 뇌물을 받고 도박을 하는 등 도덕적으로 부패한 집단이라고 싸잡아 비판하기도 했다. 또다른 신문은 노동조합 전임자 평균연봉이 6000만원이 넘는다는 사용자단체의 보고서를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마치 노조 간부가 잘 먹고 잘 사는 특권집단인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 신문을 읽다 보면 마치 노동조합이 옛이야기에 나오는 뿔 난 도깨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 어느 단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노동조합도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그 가운데는 과격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70만명에 이르는 민주노총 조합원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한 이들 노조 간부의 행태를 빌미로 해서 엄연히 현행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민주노총 전체에 대해 극단적인 언사로 저주를 퍼붓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이겠는가?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속담도 있는데, 노동조합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사용자 쪽의 논리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언론의 태도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강추위 속에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든 노조원 가운데 대부분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인하는 과격분자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을 한 사람들도 아니다. 이들은 다만 직장을 지키고 생활을 지키고자 분투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 우리의 친구, 평범한 생활인들일 뿐이다. 경제위기 속에 일자리는 불안해지고 소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직장과 생활이 불안할 때 이들을 지켜줄 사람은 누구인가? 기업이 지켜줄 것인가, 정부가 지켜줄 것인가?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은 역시 노동조합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보수언론들이 노조를 저주해도 이들은 강추위 속에 여의도에 모여든 것이다.

하버드대학의 리처드 프리먼 교수는 노동조합이 사회에 미치는 순기능을 “목소리” 기능이라고 한다.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기업이 잘못된 경영을 하고 있을 때, 목소리를 높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떠드는 것이 곧 노동조합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기득권 집단은 노조 보기를 원수 보듯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선배 교수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씀이 있다. “한 사회의 민주화 수준을 알려면 그 사회가 노동조합을 어떻게 대접하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부, 기업, 보수언론이 갖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적 의식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화를 달성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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