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25 21:19
수정 : 2009.12.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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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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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 정치의 핵심은 ‘물 다스리기’에 있었다. 치수에 성공하여 임금이 된 사람이 우(禹)다. 그의 기술은 바닥이 높아져 자주 범람하는 강에 운하를 만들어 물을 터주는 것이었다. 맹자는 이 치적을 두고 ‘우가 아홉 개의 강을 뚫었다’며 그 노고를 기렸다.
전국시대에 이르자 치수 기술은 크게 발전한다. 이즈음 백규라는 토목기술자가 제 기술이 우임금보다 낫다고 자부하였다. 맹자는 백규를 두고 이렇게 비평한다.
“우의 치수 방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이치를 따랐으니 곧 바다를 저수지로 삼은 것이다. 한데 백규는 둑을 쌓아 물을 잡으니 이웃나라를 저수지로 삼는 셈이다. 물이 거꾸로 흘러서 넘치는 것을 홍수라고 하지. 홍수는 사람을 해치므로 훌륭한 정치가들은 싫어하는 바인데, 백규는 이것을 기술로 삼으니 잘못이 크다.”(<맹자>)
곧 백규의 치수는 댐을 쌓아 물을 가두는 방식이었다. 먼 옛날보다 둑쌓기 기술이 발전해서 흙으로도 물을 단단히 가둘 수 있었기에 ‘우임금보다 자기 기술이 낫다’고 뻐긴 것이다.
우의 치수는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이치를 따랐기에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지만, 백규의 둑쌓기는 상류에 물이 넘치게 되어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라는 것이 맹자의 지적이다.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시스템’이 잘못되면 비용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생사가 갈리게 된다는 것.
비용 문제는 이미 청계천에서 나타나는 현실이다. 펌프로 물을 역류시키는 청계천 바닥의 녹조 청소비용이 만만찮고, 녹조를 없애려고 새로 자석을 설치하고 모래를 깐다는 소식이 그렇다. 어디 없이 자연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기술에는 가외비용이 끊임없이 들기 마련이다.
4대강 문제는 더 심각하다. 벌써 낙동강에는 공사가 시작되었는지 상류지역 함안군에서는 하천 부지를 빌려 하우스 농사를 짓던 사람이 자살했다는 전언이 있고 하류인 부산 삼락동에서도 곧 농민들이 떠나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그 자리에는 꽃밭이 조성된다고 한다.)
맹자의 백규 비평은 순리에 따라 물을 이용할 때 자연과 사람에게 이롭지, 그 이치를 거슬러서는 모두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기술만을 믿는다면 거기에 드는 큰 비용을 각오해야만 한다고 맹자는 경고한다. 둑을 만드는 건설비용만이 아닌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시설물이 만들어져 철거될 때까지의 비용은 천문학적일 것이다.
한데 맹자의 백규 비평이 겨누는 핵심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우임금의 치수를 두고 ‘아홉 개의 강을 뚫었다’고 표현한 반면, 백규의 것을 두고는 ‘이웃나라를 저수지로 삼는다’라고 평한 것의 대비다. 여기서 물은 물로서만이 아니라, 실은 말(언어)의 은유로 이해해야 하리라. ‘아홉 개의 강을 뚫었다’는 것은 곧 사람들 간에 말이 소통되었음을 비유한 것이다. 반면 ‘물을 가두어 저수지로 삼았다’는 것은 타인의 말을 막고 제 말만 하는 독백을 비유한 것이다. 곧 맹자는 물을 이야기하면서 실은 말을 이야기하고, 토목을 이야기하면서 정치를 논하고 있는 셈이다. ‘소통이냐, 독백이냐’가 그 속의 주제다.
대통령직은 개인의 소망이나 바람을 해소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 나라 대통령은 ‘모세’가 아닌 터다. 요컨대 나의 독백을 국민에게 들려주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들을 소통시키는 자리가 대통령직이고, 그 소통하는 행위가 곧 정치인 것이다.
본인은 치적이라 여길지 몰라도 또 훗날 이 사업을 ‘대못’이라고 여겨 뽑으려는 대통령이 나온다면, 거기 드는 비용과 손실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자연을 거스르는 기술은 재앙인 경우가 많은 법이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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