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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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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라 해서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현란한 서울광장과 더불어 각종 장식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구청 청사들이 줄줄이 들어섭니다. 요란한 행사도 많아 젊은이들은 그 찬란함을 좇아 자신들의 삶을 축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이 생기듯 지금도 용산의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는 이들, 양심과 기본권을 위한 시위로 해고되고 구속되며 가압류까지 당하는 이들, 또 먼 타국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귀국도 못하고 가족 생각만으로 힘들게 일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어요. 또한 국민보다는 정부의 대변자가 된 국회, 약하고 억울한 자보다는 목소리 큰 언론과 하나 된 검찰, 유치한 구실로 사면되는 재벌 총수 등, 보이는 것 다 말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니 이만 줄입니다만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것, 우스꽝스런 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무리 의견과 처지, 그리고 모습이 다르다 해도 우리 모두 137억년의 긴 기다림 속에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의 역사 속에서 한 과정만이라도 잘못되었으면 지금 존재할 수 없었던 우리는 존재한다는 그 기적 같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겠어요. 더욱이 이 자리에서 당신과 내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경이롭고 소중한 일이 아닐까요.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내 삶 속의 당신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용히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보며 마음으로 이야기 나눈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잠시 눈을 돌려 옆을 둘러보아 서로 나누며 소통하지 않으시렵니까. 아무리 자신의 삶과 이웃을 생각하는 진지한 성찰은 없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경영자와 회계사들의 분주한 목소리나 바쁜 눈초리 속에 정신없이 살고 싶지는 않군요. 137억년의 기다림 속에 이 별에 왜 왔겠어요.
중동에 원전 수주해서 큰돈 벌겠다는 화려한 불이 켜지고 있네요. 과거에도 그랬듯이 그늘을 없애려면 더욱 강한 불을 켜면 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어집니다. 그늘을 밝혀 소외되고 억압받아 춥고 힘든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것은 그늘로 내려와 그 안을 비출 수 있는 작은 등불입니다. 지금 눈물을 흘리시나요? 많이 힘드시지요? 저는 감히 그 눈물을 닦아 드리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같이 눈물을 흘리겠습니다. 그렇다고 판도라의 상자 가장 깊숙이 있을 정도로 인간을 기만하는 희망에 속지는 않습니다. 비록 추운 연말이지만 내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에 나 자신과 이웃을 위해 부처님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난한 여인의 작은 등불, 예수님이 귀하게 여긴 가난한 여인의 기름으로 가진 자나 못가진 자 모두를 위해 작은 등불을 켭시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속에 삶이라는 배를 타고, 그 등불에 의지해 이 우주를 여행하는 나그네입니다. 이 연말에 나그네를 따뜻하게 안아줍시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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