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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31 18:31 수정 : 2009.12.31 18:31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새천년의 첫 10년이 저물고 새로운 10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시대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수출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흑자를 올리고, 1억 연봉자의 수가 10만명을 넘어섰다는데, 서민에게는 이런 위기 극복의 성공담이 딴 나라 얘기처럼 된 지 오래다. 흔히들 양극화라 일컫는 계층 격차의 확대는 이렇듯 우리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 경제성장이 분배 개선으로 이어지던 개발연대의 신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제, 소득 양극화는 다가오는 십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소득분배 악화의 뿌리에는 여러 경제적 이해가 충돌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신이 내린 직장과 저주받은 막장으로 나뉜 일자리 양극화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 시대가 지속되면서, 일자리를 둘러싼 부모 세대의 생존경쟁이 갈수록 살벌해졌다. 그리고 유리한 취업 고지를 차지하려는 자녀 세대의 학벌경쟁도 총칼 없는 전쟁이 되었다. 한 시절 계층 상승의 통로였던 교육이 이젠 빈부 격차를 대물림하는 장치로 변했다는 지적에, 양극화의 파장이 세대를 넘어 굳어진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다가오는 10년 한국 사회에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연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십년에 대한 비관론자의 시나리오를 알고 싶다면, 미국과 일본의 지난 십년을 보라. 미국은 새로운 세기에 경제 활황을 자랑하였지만, 2009년 일자리 수는 10년 전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고 경제위기를 맞아서는 실업률이 10%대로 치솟았다. 고용 사정이 이러하니 성장의 기운은 상위 1% 소득계층에서나 확연할 뿐, 중위가구의 소득 수준은 과거보다도 떨어졌다. 한동안 서구 자본주의를 대신할 모델로 눈길을 끌었던 일본의 십년은 한층 가혹하였다. 소비 부족이 기업의 투자 침체와 실직 증대, 임금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소비심리가 한층 더 얼어붙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2009년에는 노동자 임금 총액이 1992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빈곤 증가로 경제대국의 명색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성장주의를 물신화해온 이들 나라의 실패는 우리가 새로운 규범과 사고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함을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 산업화 시기 흘린 피땀으로 이제 우리 사회도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만한 경제의 기초체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한쪽에는 소비자를 찾지 못한 생산물이 쌓이고 다른 쪽에는 과로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일이 없어 고통받는 실직자들이 공존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성장한 경제력을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십분 활용하는 새로운 사고방식, 가치와 규범이 필요하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며, 여가를 늘리는 생활로 전환하는 것, 경쟁과 독식의 문화를 넘어 나눔과 통합의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글로벌 경제위기의 시기, 탄탄한 사회안전망으로 위기를 비껴나간 프랑스의 경험이나 실직 증대 없이 위기에 맞서나간 독일의 예는 이러한 과제의 해결이 이상주의자의 꿈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제 한국 사회는 근면과 검소가 아닌 여가와 소비가 미덕인 시대, 경쟁보다는 공동체적 유대가 규범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개발연대의 성공담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지만 근검절약과 경쟁문화에 중독된 우리 안의 개발 심리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새해 새 아침 변화 불감증을 질책하는 부처의 가르침을 전한다. “나의 설법조차도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버려야 한다. 강을 건너고 나서 뗏목을 버리듯이.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임에랴.”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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