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08 21:18
수정 : 2010.01.0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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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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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거니 뒤서거니 탄생한 미국과 일본의 민주당 정부가 그 역량을 본격적으로 시험받는 한 해가 밝았다. ‘변화’와 ‘정권교체’를 내걸고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두 정권이지만 국내외의 거대한 과제들과 씨름하면서 초기의 기세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올해 미국과 일본 모두 선거의 해를 맞는다. 미국은 11월에 중간선거, 일본은 7월에 참의원 선거가 있다. 두 민주당 정부가 장기 정권이 될지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선거다.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적극적인 두 정권의 향방은 한반도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침은 물론이다. 그러나 거꾸로 한반도 정세가 미국과 일본의 두 민주당 정부의 정치적 자산이 될 수도 부채가 될 수도 있다는 역의존의 구조도 있다.
지난해 4월 오바마 대통령은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의 실현을 제창했다.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국가”인 미국이 세계적인 핵폐기의 선두에 서겠다는 비전과 결의의 표명이었다. 올봄부터 그 실현을 향한 구체적인 외교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4월에는 핵안전보장 서밋, 5월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재검토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프라하 연설은 세계적인 핵폐기라는 이상주의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는 인상이 일반적으로는 강하다. 그러나 오바마의 프라하 연설에는 ‘핵 없는 세계’로 가기 위한 ‘궤적’이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연설에서 우선 강조된 것은 미국 자신의 핵삭감 노력이었다. 양적인 핵군축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서 차지하는 핵무기의 역할을 축소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미국 정부 안에서 격론이 진행되고 있는 ‘핵선제 불사용’ 원칙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올해 초반까지는 공표될 새로운 미국의 핵정책 문서 ‘핵태세 재검토 보고서’(NPR)에 이 원칙이 포함될지가 주목된다. 미국의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비준도 즉각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핵군축을 위해 미-러 사이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과제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핵 초강대국의 ‘노력’을 토대로 세계적인 핵확산금지조약 체제 강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 체제 강화의 핵심 과제로는 핵무기 제조용 핵분열물질의 생산을 금지하는 ‘커트오프 조약’ 체결, ‘핵연료은행’ 창설 등 국제적인 핵물질 관리체제의 구축이 제시되었다. 미국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오바마 정권이 실제로 가장 중시하는 과제도 이것이다.
이어서 언급된 것이 북한과 이란 문제다. 이란에 대해서는 ‘상호 이익과 상호 존중에 바탕한 관여’와 ‘대화’를 강조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없었다면 북한도 이란과 같은 범주로 언급되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핵폐기는 단순히 이상주의자 오바마가 내거는 이타적인 목표는 아니다. 하이테크의 통상병기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핵무기는 거추장스럽고 또 중동 국가와 테러리스트로 확산되기 쉬운 위험한 무기에 불과하다.
오바마의 ‘핵 없는 세계’가 미국의 국익을 포장한 속임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미국 자신의 핵삭감 노력, 그중에서도 오바마가 “당장에 공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비준이 선결과제다. 중간선거에서 고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원의 우위를 유지하는 올해 전반이 국내정치적으로는 마지막 기회가 된다. 북-미 협의 과정에서 북한의 핵실험 중지 약속, 나아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가입을 끌어낼 수 있다면 큰 ‘자산’이 될 것은 물론이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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