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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14 20:56 수정 : 2010.01.14 20:56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여곡절 끝에 정부의 2010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올해 복지사업의 윤곽이 드러났다. 확정된 예산안은 이명박 정부 복지정책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는 3년차에 들어섰지만, 집권을 시작한 2008년에는 참여정부가 세워놓은 복지예산을 그대로 물려받는 처지에 있었다. 또 2009년은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워낙 컸던 때여서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 전략에 따라 복지예산도 덩달아 늘어났다. 그래서 경제위기를 한 고비 넘어선 2010년의 예산이야말로 서민친화적 중도실용 노선과 개발연대식 성장주의 노선의 갈림길에서 이명박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보여준다.

제법 덩치가 커진 올해 복지예산에 대해서 정부는 역대 최고 수준이라 내세우지만, 야권에서는 복지예산이 삭감되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과연 어느 쪽 주장이 맞는 말인지, 우선 복지예산 총액의 변화를 들여다보자. 2010년 복지재정은 81조원으로 2009년 본예산 75조원과 견주면 8.9% 늘어난 액수다. 이는 정부예산 전체 증가율의 세 배 가까운 수치로 복지부문이 다른 정부재정보다 빨리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5~2008년의 참여정부 시기에는 복지재정이 해마다 20% 넘게 늘었음을 생각하면 올해의 증가율은 그리 내세울 게 못 된다.

더욱이 경제위기의 여파로 서민의 팍팍한 삶이 지속되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올해 복지예산에서는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해진 흔적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가 기초를 놓은 장애연금을 통과시키기는 하였지만, 그 내용은 이미 있는 장애수당과 별 차이가 없는 무늬만의 연금으로 되어버렸다. 기초보장예산을 줄이지 않았지만, 노인, 장애인 빈곤층 92만명에게 지급하던 한시적 생계급여를 재빠르게 없앴다. 실업자 위기가정에 지급하던 긴급복지지원과 결식아동 급식에 대한 추가 지원을 없애는 데에서도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경제가 회복되는 기미를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복지지출의 고삐를 바짝 당기는 이 정부의 무모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위기를 한 고비 넘겼다고들 하지만, 날로 심각해지는 실업문제는 염두에 없다. 공식 실업자가 82만명에 달하고, 사실상 실직과 별다르지 않은 처지의 사람들까지 더하면 33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간 실업자 지원제도로서 고용보험이 나름의 몫을 하였지만, 너무 많은 실직자들이 고용보험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일자리 감소는 주로 취약근로자에 집중되어, 일용직 취업자가 26만명 줄었고, 영세자영업자도 35만명 줄었다. 이들 대다수는 고용보험 혜택에서 제외되어 무방비 상태로 실업의 타격에 노출되어 있다.

정부는 이제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고 나섰지만, 일자리 증가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분명하다. 5년간 3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버려진 지 오래지 않다. 현재 고용위기 대책의 초점은 허황된 일자리 약속을 거듭하기보다는 위기에 처한 실업자 지원대책을 서두르는 데에 있다. 고용안전망 밖의 근로취약계층을 위한 실업부조와 고용지원제도로 실업에 정면대응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실업은 우선 당사자에게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을 주지만, 가족과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경제가 성장하고 회복된다고 저절로 치유되지 않으며, 종종 생산적 노동력의 상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업에 대한 안전망을 미룰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성장을 위해서도 복지를 서둘러야 하는 이 시대에 대한 공감 능력, 새해 예산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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