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1.21 21:07 수정 : 2010.01.21 21:07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주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노동기구(ILO) 세미나실에서는 작지만 의미있는 학술회의가 열렸다. 경제위기와 노동조합이라는 주제로 경제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는 한국, 일본, 미국, 스웨덴 등에서 온 학자들이 발표와 토론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미국의 사례발표는 매우 흥미가 있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1929년에 세계대공황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경제위기를 겪은 바 있다. 대공황은 왜 ‘대’공황으로 불리는가? 우선 규모면에서 엄청났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국민소득은 공황 이전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으며 실업률은 무려 25%에 달했다. 미국 사회, 미국 경제의 총체적인 붕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위기였다. 그러나 1929년의 공황이 대공황으로 불리는 이유는 반드시 규모가 엄청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대공황을 계기로 해서 미국 경제와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에 대공황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시장만능주의에 빠져 있던 미국 사회는 대공황을 계기로 국가의 경제에 대한 개입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이후 케인스적인 국가의 시장개입이 본격화한다. 정부의 경기조절 정책이 항상적인 것이 되고 완전고용 정책이 추구된다. 독점기업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한 반독점 정책이 실시되고 각종 사회보장 정책이 도입된다. 노동조합의 조직화와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전국노사관계법이 제정된다. 이런 정책들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바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었다. 바로 이 뉴딜정책을 발판으로 해서 미국은 공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자체가 현대복지국가로 변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10여년 사이에 두 차례나 경제위기를 겪었다. 비록 규모는 미국의 대공황에 미치지 못했지만 우리 국민들 역시 경제위기로 많은 고통을 겪었으며 지금도 겪고 있다. 그렇다면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통해 우리 경제는 과연 무슨 교훈을 얻었으며 어떻게 변모했는가? 불행히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경제위기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가 우리 경제의 지나친 대외의존성에 있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지만 이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는 형편이다. 우리 경제의 대외무역 의존도는 1996년의 60%로부터 2008년에는 110%로 거의 두 배나 증가했으며, 대외채무액 역시 같은 기간 1570억달러에서 3780억달러로 2.5배나 증가했다. 국제경제의 불안이 언제든지 우리 경제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음을 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경제,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출과 연관된 산업 및 기업은 높은 실적을 올리는 반면, 이에서 소외된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도시서민 등의 생활은 경제위기 과정을 거치면서 훨씬 더 쪼들리게 되었다. 통계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6년의 0.272에서 2008년에는 0.325로 20%나 악화했으며 가장 잘사는 20% 계층과 가장 못사는 20% 계층 사이의 소득격차 역시 4.17배에서 6.20배로 벌어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미국의 대공황 때와 같은 사회개혁 움직임은 전무하다. 케인스 정책 대신에 시장만능주의가, 반독점 정책 대신에 재벌특혜 정책이, 사회보장 정책 대신에 사회복지예산 줄이기가, 노동개혁 정책 대신에 노동조합 때려잡기가 현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되어 있다. 과연 우리는 경제위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