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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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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연 현실적 대안과 희망은 존재하는가? 우리가 배우지 말아야 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이란 말일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제 진보·보수의 이념 대결을 넘어 함께 객관적 현실을 직시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문제는 이념을 넘어 존재하며, 또 이념의 틀을 벗어날 때 비로소 합리적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시민지배체제, 민주주의와 맞서는 몇몇 이론틀, 즉 과두지배체제(oligarchy), 법치 파괴와 인치, 법인지배체제(corpocracy), 사법-검찰지배체제(juristocracy), 매체지배체제(mediacracy)와 같은 학술 개념에 의거하여 하나씩 설명하고 대안을 모색해보자.
가장 먼저는 과두화다. 즉 민주화가 사회와 삶의 형평화가 아닌 과두화로 연결되어 민주체제가 아닌 과두지배체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업, 금융, 유통, 병원, 교육, 서점, 교회, 신문, 로펌 등 개인 삶과 전체 공동체를 구성하는 핵심 영역은 ‘전부’ 소수 최상위 몇몇 구성 요소로의 거대화·집중화·과점화로 치달으며 한 사회의 부와 권력과 가치와 의견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이 과두화의 통계 실상은 충격적이며, 명백히 반세계적·반민주적·전근대적이다. 그 결과 삶의 안정화를 위해 이 과두지배구조에 포함되기 위한 진입 경쟁은 살인적인 초경쟁화를 요구하며, 이 과두체제에 포함되지 못한 요소들과 삶들은 더 확장되고 더 자영화하며, 더 불안해지고 더욱 비정규화하고 거의 몰락하고 있다.
초거대 글로벌 기업의 성장 이면의 중소기업 위축 및 자영업 확산과 개·폐업 주기의 초단기화, 거대 유통구조의 확장과 동네가게·슈퍼마켓의 침몰, 소수 거대신문의 여론·광고 과점과 중소·지방신문의 위기, 첨단 거대병원의 등장과 지방·동네병원의 폐업, 최상위 대학의 세계화 및 치열한 입시 경쟁과 지방대학의 정원 부족, 대형 포럼의 성장과 일반 변호사의 수임구조 열악화, 대형 교회의 초대형화와 미자립 교회의 붕괴, 이직과 근속 주기의 단기화… 사회의 초과두화로 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자영(업) 구성비율과 초단기 개·폐업 주기를 넘어 이제 개인의 직립조차 힘든 사회구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과두지배구조에 진입한 삶들조차 언제 다가올지 모를 탈락의 공포로 인해 불안하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즉 과두화의 반면은 삶의 초경쟁화와 불안화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경제발전·민주화·과두화의 동시 진행, 그리고 개별 삶의 불안화와 초경쟁화는 맞물린 것이며, 한국 사회가 반드시 대답해야 할 문제이다. 만인 불안화는 다른 가치를 넘어 모두를 돈의 축적과 물질적 안정에 집중하는 삶에 몰입하게 한다. 인간 삶의 비극적인 물질화·속물화·동물화로서 그를 통해 우리는 삶의 주인이 아닌 물질의 노예가 되고 있다. 살인적으로 바쁜 내 일상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과연 내 영혼과 이상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물질과 재화를 위한 것인지 돌아보면 해답은 자명하다. 우리를 휩쓸고 있는 물질주의·속물주의·동물주의·건강주의는 삶의 비물질적·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가피한 현상인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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