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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29 19:54 수정 : 2010.01.29 19:54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지난해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관’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이건 기록으로 남길 만한 큰일이다. 그동안 신화 영역으로 치부했던 단군시대를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라는 식으로 물질과 도구를 중심으로 선사시대를 가늠해 오던 것을 사람을 기준으로 역사에 접근할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진열된 200여점 유물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끈 것은 단지에 가득 차 있는 ‘명도전’이었다. 어른 손바닥 크기의 표면에 명(明)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손칼 모양의 동제 화폐이다.

명도전이란 곧 칼 모양을 한 돈인 것이다. 대개 옛날 돈으로는 ‘상평통보’같이 동그란 모양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 모양을 상상하는데, 이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세상에, 돈이 칼이라니! 돈을 벌려고 목숨을 거는, ‘쩐의 전쟁’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를 예견이나 한 것 같다.

도전(刀錢), 곧 ‘칼-돈’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노라니 이익을 뜻하는 한자의 글꼴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곡식(곧 돈)을 뜻하는 화(禾)에 칼을 형용한 도(刀)가 합쳐진 것이 이(利)자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명도전은 곧 이익의 상형인 것이다. 하면 명도전은 돈을 버는 짓이 칼날 끝 위에 서는 것만큼 위태롭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뜻일까, 아니면 이익이나 소득의 뒤끝에는 목에 칼날이 치고 들어올 수 있는 위험을 각오하라는 뜻이 서린 것일까?

돈이 돈을 불리는 이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싶지만, 성경에서도 돈벌이를 두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라고 하였던 것을 보면, 동서고금이 두루 그 뒤끝을 염려했던 것 같다. 공자 역시 “이익만을 좇아 행하는 자는 사람들의 많은 원망을 사게 마련”이라고 경고했던 것이나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을 알려달라”는 양혜왕의 질문에 대놓고, “임금이라는 자가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시는가!”(何必曰利)라고 공박한 맹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국가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법과 약속을 무너뜨리는 여러 사태들이 명도전을 추억하게 만든다.

우리가 올림픽을 한 번도 치러보지 못한 나라라면 또 모르겠으나 서울 올림픽 이후 금메달 잔치까지 한껏 누려본 마당에, 고작 겨울 올림픽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이건희씨를 사면한 건 그냥 돈이 법을 이기는 꼴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내내 한 입으로는 법치를 강조하면서 또다른 입으로는 국익을 내세우며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태로 국법 질서를 능멸하는 것은 곧 나라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짓이다.

세종시 계획 변경을 국가이익이라는 이름으로 호도하는 짓이나, ‘피디수첩’의 무죄판결을 두고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대법원장에게 계란을 던지는 자들이나, 무슨 이익을 겨누고들 그러는지 대략은 짐작하지만, 이젠 아예 맨몸으로 달려드는 언론들의 주구적 행태들은 그 끝을 염려하게 만든다.

공화국이란 ‘함께(共) 더불어(和) 사는 나라’다. 한데 돈 쥔 자가 법 위에 서고, 국가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법적 정의를 죽여 나가면 공화는 망가지고 만다. 공화가 망가지면 그 끝은 스스로 만든 칼날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2000년 전의 화폐 명도전은 돈이 가진 겹의 진실,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의 말로를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국익이든 사익(社益)이든 사익(私益)이든, 이익의 밤송이에 촘촘히 서려 있는 가시들을 잊지 말라는 것. 덜 여문 밤(禾)을 삼키려 달려들면 칼날(刀) 같은 가시가 그 입을 찌르고 말리라.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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