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2.05 20:50
수정 : 2010.02.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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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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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을 담당하는 궁내청이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 이외에도 조선 왕조의 중요한 문서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일제 지배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한국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새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 문화재청과 전문가에 따르면, 궁내청 도서관인 쇼로부(書陵部)가 보유한 한국 도서는 총 4678책으로 그중 661책은 조선총독부를 통한 반출이 확인 가능한 것으로 반환 요구 대상이 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일본에 유출된 한국 문화재가 6만1409점이라고 발표했지만, 집계되지 않은 개인 소유를 포함하면 30만점이 넘는다는 견해도 있다. 한-일 과거사 청산의 미완의 과제 중 하나인 문화재 반환 문제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문화재 반환 문제도 1965년의 한-일 협정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경자세의 일본과, 경제원조 획득이 절실했던 박정희 정부 사이의 정치결착 과정에서, 문화재 반환은 개인 청구권 문제와 더불어 졸속 처리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었다. 1958년의 일부 반환과 1965년의 한-일 협정에 의해 총 1400여점의 문화재가 한국에 ‘인도’(引渡)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아사히신문> 보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본 통치시대에 우편배달부가 사용한 모자와 짚신이 반환된 반면, 국보급의 사유품은 하나같이 대상에서 빠졌다”고 한다. 당시 문화재 반환 교섭에 관여했던 황수영은 일본 쪽의 요청으로 반환 문화재의 상세한 목록이 공표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숫자 부풀리기’에 의한 내용의 빈약함을 호도하는 작업을 당시 한국 정부도 묵인한 것이다. 우편배달부의 도구들은 1965년에 반환된 ‘체신관계품목 20건’에 포함된 것들이다.
2008년에 공개된 한-일 회담 관련 일본 외교문서를 보아도 문화재 반환을 가로막는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절감한다. 총 1916건(약 6만매)에 달하는 관련 외교문서 중 문서 전체가 ‘비공개’ 처리된 것이 22건인데, 그중 문화재에 관한 것이 8건에 달한다. 문서 제목들을 보면 ‘한국 국보고서적 목록 일본각문고소장’ ‘일본 소재 한국 국보미술공예품 목록’ ‘이토 히로부미 수집 고려도자기 목록’ ‘한국관계 중요문화재 일람’ 등이다. 공개된 외교문서에서도 청구권 관련 숫자 등은 ‘먹칠’로 삭제되어 실상을 파악할 수 없지만, 문서가 통째로 비공개 처리된 것은 예외적이다. 한-일 회담이 종료된 지 4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내 한국 문화재의 목록 자체가 일본의 외교상의 이익을 저해하는 ‘국가 기밀’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2년의 북-일 평양선언에서는 “문화재 문제에 관해서는 국교 정상화 교섭에서 성실히 협의”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앞으로 있을 북-일 교섭에서 문화재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질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공개된 일본 외교문서를 조사한 국민대학 일본학연구소의 류미나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한-일 회담 당시 외교교섭 수단으로 문화재 반환을 다소나마 추진하려는 외무성을 견제하고 무력화시킨 것은 관할 기관인 문부성 문화재보호위원회에 포진한 재계와 학계, 문화계의 지도적 인사들이라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일본의 옛 귀족 등 지배계층에 속하는 인사들로 한국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수집’했으며, 전후에도 일본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했다. 문화재 반환과 관련해서 궁내청이나 도쿄대학 등의 소장품이 거론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궁내청 소장 문헌의 반환 요구에 대해 아직 일본 정부의 회답은 없는 것 같다. 불행한 100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기 위한 한·일 양국 정부의 진지한 노력과 결단을 기대한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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