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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09 21:13 수정 : 2010.02.09 21:13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지 150년이 되는 해였던 지난해에는 진화론과 관련한 행사가 많았다. 생명체가 환경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나름대로 안정된 형태로 적응해가는 진화과정은 계속 변화하는 환경으로 인해 결국 긴 시간 후에 생물집단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다양성이 확보된 집단이야말로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며, 같은 종에서도 유전적 다양성이 클수록 그 종은 생태적으로 건강하다. 가죽 때문에 밀렵에 시달린 아프리카 치타는 국가적 보호와 복원사업으로 가까스로 멸종을 피했으나, 한정된 유전자집단에서 복원된 관계로 전염병 등에 취약하고 일정 수 이상으로 집단이 커지지 못한다. 진화는 전체적인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경직된 집단은 살아남지 못한다.

생물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진화현상은 사회에도 나타난다. 경직된 후진국 사회일수록 소요와 분란이 잦아 불안정하지만 다양한 집단이나 의견이 존중되는 선진사회일수록 건강하며 외부로부터의 도전에도 안정성을 보인다. 다양성이란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을 하지 않는 것이다. 건실했던 국가에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차별이 횡행할 때 그 국가는 짧은 시간 안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 정권 이후 우리 사회는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경직된 사회로 급격히 퇴행하고 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분열을 유도한다며 매도하고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자신들의 관점이나 의견만이 옳고 타인의 관점은 철저히 응징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식의 소통부재의 획일화된 문화는 우리 사회를 서서히 병들게 하고 있다.

한편, 이런 경직된 모습이 개인 차원이라면 편견에 찬 미숙한 사람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요즘처럼 정권 차원에서 여러 사회집단의 고유한 다양성마저 없애려 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화방송>(MBC) 장악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와 더불어 심지어 자유로운 작가정신이 살아있어야 하는 작가단체에까지 금전적 지원을 미끼로 특정 시각과 입장을 강요한다. 이는 매우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으로서 국가권력이 자행하는 증오범죄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를 뿐인데 좌익빨갱이라는 명칭을 씌워 매도하면서 증오심을 나타내는 것은 일종의 인종차별이자 인종소탕과 다를 바 없다. 국민에게 특정 시각만을 강요하는 현 정권의 모습은 진화가 아닌 퇴행적 사회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로부터 유아기적 사회로의 퇴행적 변화다.

차이라는 것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차이에 대한 수용은 너와 나의 ‘관계’ 수용이다. 물론 차이로 인해 관계가 왜곡된다면 이에 대한 시정이나 교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집단 안에서 다양성이 훼손되고 바람직한 관계 형성이 깨지는 것은 차이 그 자체로 인해서가 아니라 차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 때문이라는 점이다.

또 서로 다른 차이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상대방에 대한 무시나 무관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차이 인정이라는 미명 아래 취하는 이런 자세는 차이에 대한 일종의 획일화이며 또다른 폭력이다. 상대에 대한 무시나 무관심은 관계의 단절이라는 폭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폭력은 관계개선을 위한 적극적 참여로 극복된다. 성숙한 사회로 가려면 차이에 대한 관용을 끊임없이 넓혀 다양성을 추구하되, 자유와 공존 같은 사회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국가권력에 의한 증오범죄에 끊임없이 대항해야 한다. 결국 다양한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진화의 원동력은 너와 나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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