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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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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생각은 존중하되, 작은 차이를 넘어 커다란 조화’라는 바람직한 말이 3·1절 기념사에 등장하였다. 그런데 이 발언을 한 분이 이끄는 사회는 오히려 ‘획일한 생각을 존중하되, 작은 차이를 넘어 커다란 불화’라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촛불사태를 비롯하여 용산참사, 언론관련법 개정, 인터넷 논객과 시국선언, 일제고사 거부 교사들 탄압, 그리고 쌍용차 사태에 이르기까지 사회 혼란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좌파 축출이라는 이름으로 공공기관의 장들은 거의 무법에 가까운 수준으로 보수인사로 교체되었고, 정부에 비판적인 사회단체들에 대한 지원 중단과 각종 보수단체들에 대한 무분별 지원은 물론 영화계와 문인들 모임에마저 손을 대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문화방송>(MBC) 사장마저 정부가 원하는 인물로 갈아치운 상황이니 정권 3년차를 맞이하여 커다란 조화라는 말은 듣기에도 부끄럽다.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현 정권이 집권하면서 기업 법인세를 감세하고 종부세를 폐지하여 재벌과 강남 부유층을 위한 부자 감세 정책을 밀어붙임으로써 실제로는 친기업, 친부유층의 정권임을 명백히 했으니 사회 양극화와 이에 따른 갈등은 예정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을 무리하게 집행하면서 국민 저항에 부닥친 정부는 필연적으로 경찰과 검찰의 폭력성과 편파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인권이나 절차적 민주주의는 사라졌다. 국제기구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정권 스스로의 중간평가에 군대나 군사독재 시대에나 어울리는 ‘하면 된다’는 전근대적 용어가 당당하게 등장했다.
물론 나라를 운영하는 쪽에서는 지금의 갈등과 혼란이 모두 작은 차이를 침소봉대하거나, 열정의 소신으로 일하고자 하는 현 정권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이며, 근거 없는 내용으로 악의에 찬 비방과 반대를 하는 집단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번 3·1절 기념사에 등장했듯이 ‘민생 향상을 위해 소모적 이념논쟁을 지양하고 서로를 인정·존중하며 생산적인 실천방법’을 위해, 요즘 민생은 없이 소모적 이념논쟁이 생겨나는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세종시 이전 논란이다. 많은 논의와 법적 절차가 이미 있었던 사안을 다시 꺼내어 분란의 소재로 만든 것은 누구일까. 정치권만이 아니라 지역 분열까지 나타나고, 심지어 국민투표마저 거론되고 있다. 또 논란의 4대강 사업도 있다. 강행하려던 한반도 운하 사업을 국민 뜻에 따라 접으면서 갑자기 이름만 바꾸고 제대로 된 검토나 절차 없이 진행되는 사업이다. 어디 이뿐인가. ‘피디수첩’ 재판에서도 1심 재판이 끝나고 한참 시간이 지난 시점에 판결의 과학적 내용에 대하여 학술단체도 아닌 직능단체가 갑자기 논리에도 맞지 않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일반인에게 과학적 사실을 혼란시키는 성명서가 등장한 경위도 우습지만, 여기에는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켜 사회적 갈등이 생길 때마다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온 현 정권의 퇴행적 의지가 깔려 있다.
정부는 ‘커다란 조화’가 아닌 ‘커다란 대승리’를 위해 이미 정권의 종복이 된 주요 언론으로도 모자라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권을 도구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발전을 위해 ‘작은 차이를 넘어 커다란 조화’를 진정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마녀사냥식의 자세를 버리고 법질서를 지켜야 한다. 또 양극화 해소를 위한 균형 잡힌 정책과 더불어 공권력의 원위치와, 언론과 사법권의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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