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
많은 청년들이 진학·취업·진급으로, 또는 취업과 진학의 재도전 준비로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3월이다. 새싹들의 생명력만큼이나 충일한 저들의 원기와 활력은 사회와 세계 발전의 원동력이다. 동시에 저들의 탄식과 낙망과 눈물도 함께 들려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청년들이 탄식하는 이 비인간적인 사회를 누가 만들었고, 누가 인간의 얼굴을 한 모습으로 바꿀 것인가? 법정 스님의 서거로 한국 사회는 함석헌·성철·문익환·정주영·백남준·박경리·김수환·노무현·김대중 등 자신을 던져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끌어안아 시대의 표상이 되었던 거인들을 거의 잃었다. 거인들의 시대, 영웅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제 누가, 영웅이 사라진 이 속물시대, 소인배 천국에서 우리 삶의 사표가 될 것인가? 기성세대가 물려준 부끄러운 이 시대를 바꾸려 자신의 실존을 걸고 분투할 청년 중에서 미래의 사표와 영웅이 나올 것이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불행한 상황에 비추어 그것은 틀림없이 그러할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면, 지금의 우리 정신상황과 현실은 영웅이 출현하고도 남을 시대이기 때문이다. 3월26일은 많은 한국인들의 사표인 안중근 서거 100주년이다. 국가 존망 시점에 시대 의제와 정면으로 맞선 당대의 거인들, 즉 김옥균, 이승만, 신채호, 안중근, 김구, 여운형 … 그리고 만주의 수많은 청년 파르티잔들의 결단과 중심 활동 시점의 연령을 보면 우린 크게 놀라게 된다. 모두 10~20대였다. 서른한살에 서거한 안중근 역시 청년 때에 당대 국가·동아시아·세계 최고의 가치요 자기 신념인 한국독립·동양평화·인간평등과 공존을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한국인·동아시아인·세계인으로서 삶의 최후 방아쇠를 당겼다. 전체적 시대적 실존과 유리된 개인적 인간적 본질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즉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우리가 외면 조건에 굴복해선 안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을 극복·변화시키려는 비전 속에 본질은 변화한다. 영웅도 그때 태어난다. 개인 본질도 마찬가지다. 이때 물음 없는 비전은 결코 없다. 물음은 곧 내가 직면하고 있는, ‘지금’ ‘여기의’ 개인적 사회적 세계적 실존에 대한 회의, 개선 의지로부터 출발한다. 하여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나의 전 존재를 건 결단과 준비, 행동을 통해 나도 발전하고 공동체도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나는 과연 나의 실존을 극복하고 타인의 사표와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와 세계를 만들 영웅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때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한마디의 ‘평생물음=평생화두’가 우리의 ‘평생준비=평생비전=평생방향’을 결정한다. 평생화두로부터 바로 ‘사람되기’의 원뜻을 갖는 공부가 나오고 준비와 실천이 나온다. 공부 없는 실천은 위험하며, 각고의 연마는 물음이 추동하는 영웅되기 과정이다. 난관은 그보다 더 큰 비전을 만날 때 비로소 극복되며 우리를 단련시킨다. 이 어려운 시대, 21세기 청년들의 개인적 실존은 한국인을 넘는다. 동아시아인이며 세계시민이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안중근처럼 한국인·동아시아인·세계인으로 살아갈 덕목·궁리·능력이 무엇인지를 물은 뒤, 난관을 넘고도 남을 비전을 벼려 영웅의 길을 가려 해야 한다.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난관에 직면했던 링컨은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이 어찌 이리 당당한가?” 물으며 그것들을 넘고 또 넘었다. 그렇게 단련된 그는 어느새 사회와 시대의 전체 과제를 마땅히 감당할 내면영웅으로 변해 있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청년 학업과 취업의 이 난관들을 보며, 희망의 3월에 청년들과 가슴을 열고 나누고 싶은 진리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