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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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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에 숨통을 트는 계기도 북-중 사이의 전략적인 움직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이번 방중이 실현되고 6자회담의 재개가 구체화되면, 그동안 중국이 약속한 경제지원과 대규모 투자가 실행되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가시화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대중 관계 중시로의 선회와 더불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구도에서 중국의 주도적인 영향력이 한층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1989년의 미-소 냉전 종결과 동유럽 혁명 이래 북한 대외전략의 주된 방향은 대미, 대일 관계 개선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증가하는 중국 및 한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상쇄하기 위해서도 정치·외교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경제적으로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필요로 하는 구도였다. 북핵은 그를 위한 수단이라는 측면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공식적인 이념대립 관계와는 다른 지정학적 셈법이 20여년에 걸친 북핵 위기의 배경에 있다. 그러나 이처럼 “대미 일변도”라고도 할 수 있는 북한의 생존전략은 결국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주된 전략 방향인 미국과 일본에 대북 관계 개선을 추진하려는 내적인 계기가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그간 움직임을 보면 1970년대의 미-중 및 중-일 관계 개선의 전례를 의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 대한 미국 닉슨 정권의 대소 전략상의 관심, 일본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같은 관계 개선의 정치적 추진력을 대북정책과의 관련에서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과 일본의 대북 관계 추진론의 국내 정치·경제적 기반은 매우 한정되어 있으며, 오히려 강력한 거부 세력이 존재한다. 군사 안전보장을 담당하는 부분뿐만 아니라 일본의 납치문제에서 보듯이 여론과 언론, 의회 등 사회 전반적으로 대북정책에는 소극적·비판적인 흐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몇 차례에 걸친 북-미, 북-일 교섭의 경과에도 잘 나타나듯이 정권 차원에서 일정한 전략적 고려와 결정을 내려도, 여론의 비판과 반발에 부닥쳐 좌절된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국민 여론이 외교에 영향을 미치는 “민주주의” 체제일수록 “가치관 외교”의 측면은 더 커지기 마련이며, 대북정책은 그 제약 아래 놓이게 된다. 올해 들어 한·미·일 특히 일본의 상황을 보면서 이런 국내정치적 제약이라는 요소를 크게 느끼게 된다. 지난해 말까지는 역사적인 정권교체의 여세를 몰아 민주당 정권의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모색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치자금 의혹으로 민주당 지도부가 수세에 몰리면서, 정주 외국인 지방참정권 문제에서 보듯이, 대내외 정책도 후퇴를 거듭했다. 북-일 물밑접촉은 계속되었지만, 정치적 추동력을 얻지 못한 채, 나카이 히로시 납치문제담당상과 같은 정부내 강경론자가 대북정책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을 초래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위해 오자와 간사장의 사임 가능성도 점쳐지는 가운데,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적어도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일본의 대북정책은 소극성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민주당이 승리하게 되면 하토야마 정권은 애초 내건 아시아 중시 외교의 구체적 전개를 위한 국내정치적 기반을 갖게 된다. 북-일 관계 진전의 구체적 전망을 가름할 수 있는 것은 그 이후가 될 것이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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