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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13 19:08 수정 : 2010.04.13 19:08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우리 사회에 매우 상징적인 문제제기가 강남 봉은사에서 불거져 나왔다. 여당 주요인물과 현 정권의 실세가 소위 좌파 스님 견제를 위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 내부에 깊이 관여했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종단과 정권의 유착관계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하여 여권은 조계종 내부 이권다툼으로 몰아 뒤로 빠지려 하고, 종단 총무원도 절차상 하자 없음을 내세워 내부 사안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정당한 문제제기를 차단해야 하는 총무원 입장은 정권과의 야합을 지적한 논설위원의 글에 놀라며 게재를 거부한 종단 기관지 <불교신문>의 경우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런데 이 상황은 최근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천주교 주교단을 비난하면서 종교가 정치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 보수인사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그의 눈에는 인간과 뭇 생명의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주교단이 오직 정치적으로만 보인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듯 종교의 근본 가르침은 사랑과 자비다. 이것은 소외되고 억압받아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이자 이들과 함께함으로 나타난다. 종교가 권력에 야합하고 삶의 현장을 떠나 교회나 절 안에만 머무른다면 그것은 이미 죽어버린 종교이자 종교장사꾼들의 잔치일 뿐이다. 불행히도 이것이 현 정권을 지지하고 있는 일부 개신교의 모습이자 한국 근대불교가 걸어온 길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해방 이후 격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미국을 등에 업고 기득권 형성에 성공한 개신교에 비해 불교계는 긴 역사를 민족과 함께했음에도 언제나 주변 종교로서 정권의 눈치를 보며 지내왔다. 그러나 그렇게 정권과 야합한 결과 정작 불교가 함께해야 할 고통받는 중생의 삶과는 소원해졌고, 민주화 과정에서 역할의 미미함은 역사 앞에 부끄러울 정도다. 심지어 정치 목적의 10·27 법난으로 군홧발에 짓밟혀도 침묵했고, 진상 규명도 20년이 훨씬 지나 시작될 정도로 한국 불교는 철저하게 우리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화석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투명한 사찰 재정은 그저 주지 주머니 속에 들어가 개인 재산 증식이나 종단 내 인맥 쌓기에 활용되기도 하고, 본사 주지 되면 사찰 땅 팔아먹기에 바쁜 것도 흔한 일이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낮은 곳을 향하고 언제나 사회 약자와 부당하게 소외되거나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광야와 길거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 배부른 종교장사꾼들 속에서 뜻있는 종교인이 서민과 함께하며 사회 약자의 삶에 관심 갖는 것을 무조건 정치적인 것으로 호도하고 좌파로 매도하는 눈먼 자들의 도시가 이 땅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의 말처럼 무겁고 힘든 자들과 함께하고 또 모든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겠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좌파 논리라면, 이 눈먼 자들의 도시 속에 좌파 종교인이라는 것은 매우 영예로운 지칭이다. 눈먼 도시에선 부처도 예수도 좌파다.

한 사찰의 직영 여부는 표면일 뿐 봉은사 사태는 한국 불교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역사의 중심으로 돌아와야 할 때임을 말한다. 수천년의 어둠도 단 하나의 촛불로 사라지듯 이 눈먼 어둠의 도시에서 빛을 밝힐 사명에 눈을 떠야 한다. 특정 종교와 종교편향으로 무장한 현 정권은 불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주변화시킨 것에 책임을 져야 하고, 종단은 언젠가는 겪어야 할 시대적 요청이기에 잠시 시끄럽더라도 내외 간섭을 과감히 떨치고 진실을 밝혀 참회하고 환골탈태하라. 이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지금도 묵묵히 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많은 스님들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정치에 휘둘리며 힘들게 살아가는 중생을 위해 종단이 존재할 이유이기도 하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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