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4.25 18:00 수정 : 2010.04.25 18:00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2010년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분수령인 4월혁명 50돌이다. 오늘은 혁명의 성공을 알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50돌이 되는 날이다. 그 4월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고, 무엇을 말해왔는가? 오늘 우리가 성찰해야 할 4월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4월혁명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건국 정신의 복원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 건국의 가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세계 냉전과 남북 분단의 산물인 반공안보였고, 다른 하나는 한말 이래의 공화주의 운동과 입헌국가 수립 노력을 계승한 민주주의였다. 이승만 정부는 반공안보는 실현하였으나 민주주의는 질식상태로 몰아갔다. 4월혁명은 건국 정신인 민주주의를 복원한 쾌거였고, 그것도 한말 이래 밑으로부터의 공화운동·시민혁명 기도를 최초로 실현한 위업이었다.

건국 대통령, 국가수호 정부를 끝내 타도함으로써 4월의 승리는 또한 남한에서 독재의 항구화가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빛나는 첫 승리의 기억은 이후 막강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신심과 열정을 심어줘, 민주주의를 향한 고갈하지 않는 역사적 자원으로 작용했다. 자유의 공기를 만끽했던 승리의 집합기억은 이후 87년의 승리 때까지 살아나고 또 살아나곤 하였다.

나아가 그 4월은 전 한반도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반공안보를 넘는, 남한이 북한에 앞서야 할 이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와 자유의 정신이었다. 그 4월은 전 한반도 차원의 첫 민주혁명·시민혁명이자, 남한이 북한에 자생적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인권·자유에서 앞서 있음을 보여준 결정적 계기였다. 즉 민주와 자유의 깃발을 꽂음으로써 정통성 우위의 한 토대를 제공한 것이었다. 이승만이 반공안보로 국가정당성을 수호하는 일방 민주파괴로 그것을 훼손하였다면, 4월은 민주복원을 통해 그 구비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그 4월의 의미와 자장은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와 세계를 아우른다. 그것은 전후 최초의 동아시아 시민혁명·민주혁명이자, 냉전 초기 밑으로부터의 참여를 통해 독재정부를 전복시킨 세계적 사례에 속한다. 그 젊은 참여자들, 희생자들은 20세기 후반 세계 민주발전의 글로벌 선각들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한국 민주혁명의 전격적 진전은 미국에 세계 차원에서 반공국가들의 진로를 깊이 고민하게 하였다. 혁명 시점에 이승만 하야, 대안 모색, 한국의 장기 국가발전 경로 설정에 깊숙이 개입하여 판을 주조해간 미국의 내밀한 대응을 보면 4월혁명은 냉전시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한 시금석 구실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그 4월은 한계를 갖는다. 혁명 성공 이후 혁명 주도세력의 민주정부 수립에의 불참·배제와 기존 정당의 신헌법 제정과 신체제 구축의 독점, 반(半)대통령제 헌정구조의 심각한 불완전성과 그로 인한 대통령-총리의 지속적인 갈등, 그리고 반공·국제주의(민주당 정부) 대 통일·민족주의(학생·사회운동 세력)의 분리와 격돌, 일부 혁명세력의 변절과 독재참여 등. 그러나 첫 민주정부의 제약을 갖는 초기 실험이 군부쿠데타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3·1운동과 한국전쟁 때처럼 50년 전의 젊은 영혼들은 공동체 문제에 대해 자기희생적 참여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의식과 행동의 세계선도성을 보며 오늘을 돌아본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과연 시민 덕성의 함양, 리더십 수련, 참여와 헌신을 통해 이 시대를 보편가치의 차원에서 직시하며 자신과 공동체의 발전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세계선도성을 갖는 청년들로 자라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아니 우리의 학교·대학·교사·사회는 지금 그들을 그렇게 양육하고 있는지 묻자. 50년 전의 젊은 세계 선각들이 이 시대에 던지는 물음을 되새기며.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