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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06 21:06 수정 : 2010.05.06 21:06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는 민주적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일에 대한 대가의 차이를 늘려 효율과 성장을 가져오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시장은 동시에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하여 자본주의가 불러온 불평등을 줄이는 구실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에게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보편적이고 동등하게 보장한다. 19세기에는 재산 없는 자와 여성은 투표권이 없었고 당시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지식인에게 더 많은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 옛말이 되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생활에 대한 권리도 시민권의 일부가 됐다. 시민의 사회권이 확장됨에 따라 복지급여도 다른 권리처럼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게 됐다. 정치적·사회적 권리가 자리를 잡은 선진사회는 시장 불평등의 고삐를 죌 수 있게 되었다.

정치적 권리와는 달리 사회권을 실현하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정부와 사회가 시민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모든 시민에게 복지급여를 충분히 주는 것은 돈이 많이 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어려운 계층에게만 급여를 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선별주의 주장도 나타났다. 사회마다 생각이 다르니, 스웨덴 등 평등지향적인 유럽 사회에서는 보편주의 제도의 비중이 크고, 미국과 같은 복지후진국에서는 선별주의가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보편주의 논쟁이 한창이다. 시민단체와 야권에서는 전면적 무상급식을 요구하고, 정부에서는 저소득층 위주의 선별적 급식을 주장한다. 복지 확장을 꺼리는 정부는 선별급식이란 방어논리에 기대어 궁지를 벗어나고자 한다. 야권은 전면 실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모두 다 한마음은 아니다. 특히 민주당의 태도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바로 얼마 전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참여정부 때에는 말이 없다가 선거를 앞두고 나서는 것이 보기 민망하다.

복지에 그래도 우호적이었던 참여정부 시절에 무상급식 확대가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무상급식이 이렇게까지 큰 쟁점이 되어야 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의 기초생활보장이라는 면에서 따지자면, 노인·장애인 지원이 우선이다. 저출산 대책에서 보자면 보육이나 부모휴가 제도의 확대가 중요하다. 아동 양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라면 아동수당을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아동 급식이 문제라면 학교급식보다는 방과후 저녁과 방학 동안의 결식아동 대책부터 짚어보아야 한다. 사실 참여정부는 결식아동 대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사정이 좋지 않다.

무상급식 논쟁은 보편주의라는 복지정책의 원칙을 시민들이 생각해볼 좋은 기회가 되었지만, 지나치게 많은 정력이 여기에 소진됐다. 이제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무상급식은 잠시 잊고, 새 지방정부가 할 일에 대해 넓게 바라볼 때이다. 지역마다 생활비가 달리 들고 주거비 차이가 크니, 지방정부는 이런 실정을 헤아린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집세가 비싼 곳에서는 임대료를 지원할 필요가 있고, 생활비가 많이 드는 곳에서는 생활임금 정책이 실시돼야 한다. 물가가 비싼 미국의 대도시 중에는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임금 제도를 도입한 곳이 많다. 고령 노인이나 중증 장애인 모두에게 최저생계비를 지원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고, 보육지원을 크게 늘리는 것도 미룰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여기가 보편주의 논쟁이 절실한 지점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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