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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27 19:40 수정 : 2010.05.27 19:40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영국 총선은 소선거구식 다수대표제도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왜곡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 선거에서는 중도좌파의 자유민주당이 최대의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다. 닉 클레그 당수는 텔레비전 토론 직후 여론조사에서 61%의 지지를 얻어, 22%의 지지를 얻은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나 17%의 지지율에 머무른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총리를 압도하였다. 그러나 며칠 뒤 선거에서 자유당이 얻은 표는 과거보다 약간 높은 23%에 그쳤고 의석수는 과거보다 5석이 줄어드는,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선거 결과가 비정상적으로 나온 데에는 최대 다수표를 얻은 일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도 탓이 크다. 승자가 되지 못한 후보를 지지한 투표는 모두 죽은 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의 소수파를 대변하는 신생정당의 지지표를 사표화하는 결과를 낳아 기성 거대정당의 권력을 강화한다. 득표율은 집권 노동당과 6%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얻은 의석수는 200석이나 적은 자민당의 실패는 그 증거이다.

이런 승자독식형 선거제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득표를 극대화하려는 정치활동이 장려된다. 양대 정당의 선거공약은 중도적 정치성향을 가진 부동층 투표자들의 지지를 얻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선거 승리라는 단기적 목표를 위해 급조된 공약들은 정당의 핵심 지지층의 정책성향과 어울리지 않아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실용중도를 내세워 당선되었지만, 집권 뒤에는 한나라당 고정 지지세력의 개발독재식 성장주의가 득세한 것도 한 예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민주주의 원리에 좀더 충실한 대안적 선거제도들이 발전하여왔고, 그중 대표적인 게 비례대표제다. 전국을 단위로 얻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는 사표를 방지하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사표를 줄여 유권자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다른 방안들도 있다.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라면,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때 상위 득표자 2인에 대한 결선투표로 당선자를 정하는 좋은 방안이 있다. 얼마 전 영국에서 보수당과 자민당이 합의했다는 선호투표제는 재투표의 번거로움을 피하면서 결선투표제와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민주적 대안들은 특히 사회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 지지표의 사표화를 막아 평등선거권 실현에 기여한다. 또 정당들이 자신들 고유의 정강정책을 내세워 지지층을 넓혀나가는 장기적인 발전전략에 진력하도록 자극한다. 그 결과 사회의 다양한 세력이 정치적 대변자를 얻게 되어 민주주의적 정치활동의 틀 안에서 집단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또 정책과 지지층이 유사한 정당끼리의 대립과 반목을 조장하는 승자독식형 제도와는 달리, 이런 대안제도들에서는 정당간 연대와 협력이 촉진된다. 대표적인 예로 좌파정당이 중간계층의 정당과 연합하여 복지지출을 늘리고 재분배를 강화해온 북유럽 국가들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총선부터 지지정당에 대한 투표로 비례대표를 뽑는 제도가 시행돼 진보정당의 정치적 진출을 도왔다. 비례대표제는 지방선거에도 도입되었고, 다가오는 선거에서도 비례대표 지방의원을 뽑는다. 하지만 아직 비례대표의 비중이 적다. 또 서울시장 등 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승자독식제가 강고하여 소수파 후보 지지표는 사표가 되기 쉽다. 거대야당은 이를 이용이라도 하듯 사표론을 내세워 소수파 진보후보의 사퇴를 압박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복지 지체는 민주화가 늦어진 탓이 크다. 이제 시민의 선거권은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평등선거권을 가로막는 승자독식 제도의 폐해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평등선거권이 없는 곳에서는 진보정당도, 복지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민주주의와 복지의 발전을 이루려는 선거제도 개혁 노력이 강조되어야 할 시기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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