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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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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불어오는 “북풍”에 일본 민주당 정권도 발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의한 공격으로 단정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5월20일 밤, 하토야마 총리는 도쿄 시내에서 열린 국제회의 기조연설을 급히 변경해 북한을 비난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북한의 행동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강경자세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각국 수뇌 발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이었다. 주말에 예정되었던 자신의 선거구인 홋카이도 방문도 취소했다. 굳은 표정으로 단호한 대응을 강조하는 하토야마 총리의 모습은 방송 매체에 되풀이 보도되었다. 말뿐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처도 취해졌다. 하토야마 총리는 24일 관계각료로 구성된 안전보장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직접 지시했다. ①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응을 포함한 한·미·일의 연계 강화 ②일본의 독자적인 제재 ③북한을 출입하는 선박에 대한 화물검사특별조치법의 조속한 성립 ④정보수집 강화 등이었다. 이 지시도 신속하게 행동에 옮겨졌다. 화물검사특별조치법안은 27일 참의원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긴급 통과되었다. 북한을 출입하는 선박들을 공해상에서 일본이 검사할 수 있게 하는 법안으로 지난해 5월의 북한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제재 결의를 근거로 한 것이다. 애초 자민당 아소 정권이 시도한 법안이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반대로 성립되지 못했던 경위가 있다. 민주당은 정권 성립 뒤인 지난해 가을 자민당 안과는 달리 자위대의 관여를 배제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북-일 교섭에 대한 기대감에서 보류해 오던 것을 서둘러 통과시킨 것이었다. 공안조사청 장관도 27일 특히 총련에 대한 정보수집 강화를 지시했다. 지도력 부족과 정책 혼선으로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하토야마 정권답지 않은 신속하고 단호한 모습이다. 그러나 “북풍”이 민주당 정권의 지지율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이미 북한과의 경제관계를 사실상 단절한 일본이 취할 수 있는 강경책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검토중인 조처도 대북 송금 보고의무의 기준액을 1000만엔에서 500만엔으로, 방북자의 현금소지 신고 기준을 30만엔에서 10만엔으로 내리는 등 실무적인 것들에 그치고 있어, 추가 제재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 안에서도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실제적인 효과가 의문시되더라도 지지율 저하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진 민주당 정권으로서는 “북풍”의 정치적 효용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혼미를 거듭한 후텐마 기지 이전문제에 관해서도 결국은 자민당 정권 시절의 원안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로서 하토야마 총리 자신이 “일본 주변 안보상황의 악화”를 들고 있다. “북풍”의 외교적 효용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독도문제의 교과서 기술, 정주 외국인 참정권 법안의 후퇴 등 한-일 관계의 악재가 천안함 사건의 그늘 속에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이 한국 정부에 대한 전면적 지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런 외교적 타산도 엿보인다. 나아가 한반도에서 국지적인 군사충돌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면서,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일본의 외교·군사적 역할이라는 관점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선박화물검사 특별조치법안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이 안보리에 회부되면 비상임이사국인 일본의 외교적 존재감도 커진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일본 외교의 입지가 또다시 신냉전 구도의 제약 속에서 축소되는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후텐마 기지 문제와 더불어, 미-일 동맹의 상대화와 동아시아 외교 확대를 추구하려던 하토야마 외교의 좌절이 도처에서 표면화하고 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 정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주변 정세도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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