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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17 18:17 수정 : 2010.06.17 18:17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0여년 전만 해도 ‘가난’ 하면 노인이나 장애인같이 일할 능력이 없는 계층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열심히 일을 해도 기초생계를 꾸리지 못하는 근로계층이 빈곤층의 주역이 됐다. 근로빈곤층이 늘어난 일차적 원인은 지난 10여년 사이 저임금 근로자가 많아져 전체 근로자의 4분의 1을 훌쩍 넘어선 데 있다.

비정규 일자리가 늘자 근로빈곤층은 한층 가파르게 늘어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으로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근로자의 30%에 육박하여 회원국 중에서는 스페인 다음으로 많다. 이들 회원국들에서는 평균적으로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12%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근로빈곤 문제가 심해진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안정적으로 먹고살 만한 수입을 보장하는 일자리가 적어지니, 취직보다는 자기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흔해졌지만 그 결과는 더 참담하다. 자영업자 열 중 넷 가까이가 저임금 근로자와 비슷한 궁핍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빈곤층 지원제도가 있지만, 근로빈곤층과는 거리가 멀다. 신체 건강하고 일자리마저 가지고 있으면,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일을 못할 정도로 건강을 상하기 전에는 여간해서는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열심히 일을 하는 근로자가 일하지 않는 수급자보다 더 곤궁한 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에 대해 새로운 지원방안을 찾는 관심이 커졌다. 최근 서유럽 국가들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일을 통한 빈곤탈출’(making work pay) 전략이 그것이다. 같은 접근법으로 우리나라도 최저임금제도를 개선하고 근로장려세제를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두 제도를 잘 연결하면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급여가 미흡한 수준인데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뒷걸음질 치는 모습까지 보여 근로빈곤층에 도움을 주기에는 크게 모자란다.

지난해 처음 실시된 근로장려세제는 부양자녀가 있는 근로자 중에서 까다로운 자산기준을 통과한 저소득층 59만명에게 평균 월 6만원을 조금 넘는 급여를 주었다. 일년이 지난 올해도 급여기준이 똑같이 유지되어 근로빈곤층 지원제도로서의 구실이 더욱 약해질 것 같다. 최저임금은 참여정부 시기 동안 꾸준히 올라 2008년에는 총액임금의 32%까지 되었지만, 현 정부에서는 인상률이 크게 떨어졌다. 2010년 최저임금은 4110원으로 월급 액수로는 86만원가량 되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다행히 근로장려세를 받는다고 해도 총수입이 3인가족 최저생계비 111만원조차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결정은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일자리의 수준을 정하는 문제다. 노동력이 인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한, 일자리의 최저기준선을 정해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하는 것은 인간적인 사회를 향한 정당한 노력이다. 최저임금제는 이런 점에서 유해하고 위험한 환경의 일자리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기업주에게는 생산비용 상승을 의미할 뿐이어서 일자리를 줄인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최저임금제와 정부가 돈을 대는 근로장려세를 적절히 조화시켜 일자리 축소 걱정 없이 근로빈곤을 누그러뜨리는 방안이 제기됐다.

6월 말이면 최저임금액이 결정된다. 노동계는 5180원으로 인상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대로 된다 해도 월급이 108만원 정도로 여전히 3인가구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지난해 경제위기를 들어 최저임금 삭감을 주장하던 경영계가 올해에는 5%대의 경제성장을 바라보면서도 동결을 고집하니 합의가 어려워 보인다. 괜찮은 사회라면 형용모순이라 할 ‘근로빈곤’이 사라지는 사회, 우리에게는 아직도 멀기만 한 꿈에 지나지 않는가?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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