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18 21:23
수정 : 2010.06.1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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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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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경제연구소(HERI)의 블로그 ‘착한경제’(goodeconomy.hani.co.kr/)에 지난 6월3일 쓴 칼럼을 놓고 작은 논쟁이 일어났다. 새로 당선된 교육감이 “20년 뒤 삼성전자에, 한국의 대표적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내놓는 데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쓴 게 출발이었다. 댓글로 반론을 편 독자들은 ‘교육은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내놓는 일이 아니다’라는 논지를 주로 펼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교육의 목표가 기업에 인재를 대는 일이라고 주장한 게 아니다. 진보 교육감이라면 20년 뒤를 준비하는 근본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20년 뒤의 경제는 지금과 전혀 다른 인재를 요구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 글을 쓴 이틀 뒤, 캐나다의 비영리단체 ‘공감의 뿌리’를 이끌고 있는 교육혁신가 메리 고든을 만났다. 세계적인 사회적기업가 지원기관 아쇼카의 창립자 빌 드레이턴에게 한국의 교육감 선거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꼭 만나보라며 소개해준 사람이다.
메리 고든은 공교육 체계 아래서 ‘공감교육’을 실시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어린 아기와 소통하도록 하면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거나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다. <공감의 뿌리>라는 책을 통해 한국에도 소개되어 있다. 좁게는 교실의 ‘왕따’ 현상에서 넓게는 흉악범죄와 인종 및 민족분쟁까지, 비인간적 사회현상은 대개 공감능력 부족에서 생긴다는 진단에서 나온 교육이다. 이런 교육이야말로 20년 뒤를 준비하는 것일지 모른다.
미래 경제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것이다.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대기업에서의 변화가 커질 것이다. 사상가 찰스 핸디는 ‘코끼리와 벼룩’의 시대가 온다고 예견했다. 코끼리와 같은 다국적 대기업들은 지금보다도 더욱 커진다고 핸디는 예측한다. 또 웬만한 국가보다 더 커질 코끼리 기업에 소비자와 투자자 등이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은 지금보다 훨씬 무거워질 것이다. 사회책임경영(CSR)을 무시하는 기업은 코끼리로서 살아남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둘째, 1인 기업, 소기업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코끼리는 그 등을 뛰어다니는 벼룩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고 핸디는 비유했다. 벼룩이란 가볍고 빠르고 전문적인, 1인 기업과 소기업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중요해질 것이다. 셋째, 사회적 사명과 시장적 문제해결능력을 함께 지닌 사회적기업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영리와 비영리의 확연한 구분이 희미해지고, 하이브리드형 조직이 늘어날 것이다.
세 가지 변화는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바꿀 것이다. 주입식 교육에 잘 적응하는 입시형 인재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창의성을 갖고 독립적으로 시장에서 성장할 능력을 갖추고, 동시에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사회적 책임감을 갖춘 하이브리드형 인재가 필요해진다는 이야기다. 진보 교육은 이런 인재를 기르는 교육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앞의 메리 고든의 사례에서 충격을 받은 이유는, 이런 실험이 공교육 체계 아래서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아기와 소통하는 교육’이라는 해결책은 매우 실험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에서 이 교육 실험이 지방정부와 학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메리 고든은 2009년 캐나다 교사노조로부터 ‘공교육 옹호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의 진보 교육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교육은 낡고 경직된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끊임없이 실험하면서, 20년 뒤에 우리 사회에 정말로 필요한 인재를 꿋꿋이 키우는 일은 진보 교육감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오늘 신문을 보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두 눈을 감고 20년 뒤를 떠올리면 할 수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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