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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01 20:08 수정 : 2010.07.01 20:08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보수주의에 대해 고정관념이 강하다는 점이다. 2000년 초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자명한 진리처럼 유행한 ‘수첩공주론’이 하나의 예이다. 그 당시 필자는 박근혜 의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제기하여 주변의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 힐난을 받곤 했다. 더이상 수첩공주론을 제기하는 이는 없지만, 과연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은 이제는 박근혜 의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박근혜 의원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미국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라는 안경을 통해 보는 것이다. 물론 미국 상원의원 중 가장 불같은 성격의 매케인 상원의원과 한국 국회의원 중 가장 냉정한 스타일의 박근혜 의원은 너무 다르다. 하지만 두 정치인은 미국과 한국 지형에서 매우 독특한 성격의 보수주의의 부상이라는 점에서 흡사한 점이 많다.

우선 두 의원의 보수주의는 그로버 노퀴스트와 조갑제로 상징되는 양 국가의 전통적인 극우보수주의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매케인의 부패와의 전쟁, 박근혜의 국가균형과 복지국가론은 전통적 보수진영을 매우 불쾌하고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어빙 크리스톨이나 김문수로 상징되는 좌파 출신의 새로운 보수(즉 네오콘)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급진주의 보수와 섞이기에는 두 사람은 지극히 전통적이다. 혹은 실용주의자 출신에서 보수 주류의 적자가 되어 한동안 강경보수로 변신한 부시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 보수주의와도 무척 다르다. 부시와 이명박 대 매케인과 박근혜는 서로를 진보진영 경쟁자보다 더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그럼 도대체 이들은 어느 흐름 속에 있는 것일까?

매케인과 박근혜는 양 국가 역사상 가장 걸출했던 보수의 21세기 부활이 애국이라고 믿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매케인의 영웅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고 박근혜의 영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전자는 미국을 제국으로 부상시켰고 후자는 한국의 압축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양 국가의 진보주의자들과 극우보수들이 가끔 잊는 사실이지만 매케인과 박근혜가 재해석하는 이 두 보수 대통령은 때로는 개혁적 보수라는 점이다. 이들 보수 대통령들이 가장 좋아한 단어가 공통적으로 ‘국민’이고 제일 싫어한 단어가 특권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매케인이 기억하는 루스벨트는 금권정치와 싸웠고 친환경주의자이다. 박근혜가 기억하는 박정희는 의료보험과 그린벨트 규제의 전사이다. 이들에게 애국과 개혁은 각각 보수와 진보의 아이콘이 아니라 위대한 보수 속에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매케인의 이런 독특한 개혁보수주의는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며 놀랍게도 민주당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극우화된 보수 지형에서 당내 왕따 신세가 된 그는 경선을 통과하기 위해 부시와 화해를 시도했다. 이에 따라 대선 후보까지는 되었지만 보수 주류는 끝까지 내키지 않아했다. 중도와 진보는 더 매력적인 애국주의자이자 경제해결사일 뿐 아니라 매케인처럼 철지난 루스벨트식의 패권주의자도 아닌 오바마를 선택했다. 오늘날 매케인은 애리조나주에서조차 생존하기 위해 더 극우화하고 있다.

박근혜 의원은 지금 매케인의 초기 경로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 즉 박정희의 재해석에 기초한 개혁적 보수주의 색채를 강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전통적 보수와 ‘이명박 보수주의’는 당혹해하거나 불쾌해하고 있다. 앞으로 그녀에게는 매케인처럼 극우적 당과 중도층 사이의 복합방정식, 다가오는 경제위기, 냉전주의와 신세대의 평화주의 사이 괴리 등 첩첩산중의 장애가 놓여 있다. 앞으로 놀라운 지각변동이 기다리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를 잘 이해하는 길 중 하나는 박근혜의 새로운 보수주의 실험에 대한 깊이있는 관찰일 것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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