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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08 17:59 수정 : 2010.07.08 19:08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실업과 질병, 노령 등의 위험으로부터 전체 국민을 보호하는 사회보험은 복지국가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제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그린 윌리엄 베버리지는 자신이 구상한 사회보험이 영국 사회에 뿌리를 내림에 따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보장을 실현한 복지국가가 완성될 것으로 보았다. 10여년 전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와중에서 국민의 정부도 이런 서구 모델을 따라 복지국가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전 사업장으로 확대하였고, 전체 국민을 국민연금 가입 대상에 포함하였다. 국민의 정부는 사회보험이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에게 복지국가의 장밋빛 미래가 열릴 것을 기대하였지만, 이후 깊어만 가는 양극화 현실 앞에서 그 꿈은 무너져 버렸다.

무엇보다도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줄어들지 않았다. 근로자 등 직장가입자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자영업자 등의 지역가입자들은 860만명 중 500만명이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납부예외’ 상태에 있다. 젊은 시절 보험료를 납부하고 노후에 연금을 받도록 하는 국민연금은 노후빈곤에 대한 강력한 대비책이 될 수 있지만, 이렇게 젊은 시절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고용보험의 경우도 심각성이 덜하지 않다. 임금근로자의 3분의 1 넘는 수가 미가입 상태라 실직을 당해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할 처지에 있다.

사회보험 사각지대에는 보험료를 징수하는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점이 작용하였다. 그래서 내년부터 정부는 각각 운영해오던 4대 사회보험 징수체계를 하나로 통합하여 보험료를 걷기로 하였다. 하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민연금을 보면, 1년 이상 납부예외 상태에 있는 400만명 가운데 4분의 3은 그 이유를 실직 때문이라고 한다. 나머지도 생계곤란 등을 이유로 든다. 고용보험 또한 영세업체 근로자, 저임금 근로자, 비정규직 등 취약근로자의 가입률이 낮다.

요컨대 사회보험에서 제외된 다수는 당장 살아가기가 힘겨워 나중을 대비할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인 것이다. 그래서 보험료 징수를 강화하는 대책만으로는 이들의 반발을 사기 쉽다.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기 위해서는 보험료 부담을 낮추어 당장의 소비와 미래 준비 사이의 충돌을 해소해야 한다. 관련 연구기관에서 논의되고 있는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보험료 감면은 한 방안이 될 것이다. 근로장려세 지원 대상을 늘리고 급여수준을 높여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1970년대 미국의 근로장려세제도 저소득층의 사회보험료 증가 부담을 줄이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부자감세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이런 방안들은 계층간 형평성을 회복하는 구실도 한다.

이런 일들에는 정부재정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재정당국은 난색을 표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재정지출로 국민 전체를 사회보험의 보호막으로 끌어들인다면, 장기적으로는 정부재정이 더 안정될 수 있음을 짚어보아야 한다. 모든 선진국가가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 연금제도를 발전시켜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각지대를 방치하여 노후빈곤과 실업자 생계곤란에 대한 보험장치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남는 유일한 대책은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투여일 수밖에 없다.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보험은 개발독재 시대에 그 틀이 만들어져 경제성장을 위한 보조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시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 노력은 미약하였다. 정부의 재정적 부담은 최소화되고 가입 당사자의 기여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는 민간보험식 원리가 극대화되었다. 지난 10여년간 세상은 달라졌지만, 우리 사회보험 속에 남은 성장주의 유산은 청산되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시민의 사회권을 보장하고 사회통합을 도모하는 복지국가의 기본원리로 돌아가 사회보험의 재편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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