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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13 20:49 수정 : 2010.07.13 20:49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 아시아네트워크편집장

요 몇 달 사이 국제정치판에 강한 ‘여풍’이 불고 있다. 5월 초 라우라 친치야가 코스타리카에서 대통령 바람을 일으키자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는 캄라 퍼사드비세사가 총리 바람으로 대꾸했다. 6월에는 핀란드에서 마리 키비니에미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줄리아 길라드가 총리로 등장했고, 7월 들어서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로자 오툰바예바가 대통령이 된 데 이어 슬로바키아에서는 이베타 라디코바가 총리가 되면서 줄바람이 몰아쳤다.

1990년대 국제정치판에 총리 16명과 대통령 11명을 배출한 여풍이 불고는 한동안 뜸하더니 다시 밀어닥친 이번 바람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을 낌새다. 이미 여성이 정부를 이끌고 있는 독일, 칠레, 아르헨티나, 리투아니아 쪽 바람까지 덧붙여 브라질 차기 대통령 선거 쪽으로 밀려가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있다. 이 나라들 가운데 여성 의원 비율이 세계 평균치인 18.8%보다 낮은 곳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핀란드 40%, 코스타리카 38.6%, 아르헨티나 38.5%를 비롯해 어림잡아 평균 30%대에 이른다. 여성 최고정치인이 저절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르완다가 56.3%로 지구에서 유일하게 반을 넘겨, 정치에서 성 평등이 정상 작동하려면 지표로는 아직 한참 멀었다.

이쯤에서 아시아의 여성정치와 좋은 비교거리가 나온 셈이다. 현재 아시아에서 여성 최고정치인은 방글라데시 총리 셰이크 하시나 한 명뿐이다. 아시아의 여성 의원 비율을 놓고 보면 이런 일에 의문을 달고 말고 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나마 공산당이 이끄는 네팔이 33.2%를 넘겼고, 사회주의를 내건 베트남이 25.8%, 중국이 21.3%로 겨우 아시아의 체면치레를 한 꼴이다. 14.7%인 한국과 11.3%인 일본은 각각 세계 81위와 90위에 올라 평균에도 못 미치는 정치적 후진성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아시아는 여성 최고정치인을 배출할 만한 토양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아시아가 그동안 국제정치판에서 다양한 여성정치 기록을 세웠던 건 그저 ‘마술’일 뿐이다. 1960년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가 세계 최초로 여성 총리가 되었던 일도, 1988년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가 무슬림사회 최초로 여성 총리가 되었던 일도, 1950~2007년 현대정치사에 등장한 여성 총리 36명 가운데 12명이 아시아 출신이란 사실도 모두 그렇다는 말이다.

이런 기록들을 헤집어보면 저마다 ‘아빠(남편)정치’와 ‘눈물정치’를 바탕에 깔았던 공통점이 드러난다. 시리마보 총리는 남편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총리가, 그들의 딸인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남편 비자야 쿠마라퉁가가,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아버지 셰이크 라만 대통령이, 베굼 칼레다 지아 총리는 남편 지아우르 라만 대통령이,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이 암살당하면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부토 총리는 아버지 줄피카르 부토 총리가 처형당한,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아버지 수카르노 대통령이 쿠데타로 쫓겨난 배경을 지녔다.

이렇듯 아시아의 여성 최고정치인 가운데 ‘아빠정치’와 ‘눈물정치’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필리핀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의 딸인 아로요 대통령과, 인도 초대 총리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 총리가 ‘눈물정치’에서는 벗어난 경우지만.

결국 유령을 불러낸 ‘아빠정치’에 대한 환상과 가문의 비극을 ‘눈물정치’로 어루만져준 아시아적 동정심이 여성정치를 꾸려온 동력이었던 셈이다. 해서 홀로 일어선 건강한 여성정치인을 아시아에서 보기 힘들 수밖에 없었고, 성 평등은 여전히 아시아의 숙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여성정치의 토양이 없는 한국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독주하고 있는 박근혜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 아시아네트워크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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