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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19 18:28 수정 : 2010.07.19 18:28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한국전쟁 60돌 ①

한국전쟁 60주년이다. 60년 전의 대참화를 담아낼 말이 있을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없음에도 우린 사람목숨을 부지기수로 잃었다. 한반도는 시쳇더미로 묻혔고, 삶이 아니라 죽음이 일상이었다. 부모를, 형제를, 자매를, 자녀를, 친척을 잃고 또 잃었다. 하여 살아남은 자들의 삶도 죽음보다 결코 낫지 않았다. 동생을 등에 업은 채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나이 어린 소녀, 남편을 잃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처연하게 우는 아낙, 갑작스런 가장의 죽음 앞에 생계가 막막해진 가정들, 보리 한 줌을 못 구해 허구한 날 굶는 젊은이들, 사랑하는 아이를 가슴에 묻은 엄마들, 고향에 돌아와 먹고살 길이 전혀 없었던 상이군경들… 이 절망과 한을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삶은 몸서리칠 만큼 힘들었다. 부모·남편·자녀·아내를 따라 함께 죽지 못한 것이 억울할 만큼 너무 힘겨웠다. 기막힌 낙망·설움·가난·눈물이 온 땅에 넘쳐흘렀다. 더 이상의 고통은 없었기에,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절망적 소망’, 또는 ‘단말마적 희망’만이 남았다. 누군가 현세에서 지옥을 찾으려 했다면 한국전쟁과 직후의 한반도를 보면 충분했다. 전쟁이 멎었을 때 한반도는 ‘역사의 영년’이었고, ‘없음만이 존재’했다. 누군가 ‘제2의 창세기’를 써야 했다면 1953년의 한국민들이었다.

그 암흑으로부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죽음과 슬픔은 오늘의 기적을 있게 한 토대였다. 한국민들은 죽음을 생에의 의지로, 비극을 결기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꿔갔다. ‘더는 잃을 것이 없는’ 그들은 ‘죽기살기’로 달려들었다. ‘더 잃을 것 없는’ 극점에서의 ‘죽기살기’, 즉 물극필반으로서의 오기와 소망의 솟아오름이었다. 그 소망은 기적을 이루어갔다. 문맹퇴치, 전후복구, 반독재, 신작로 건설, 경제개발, 새마을운동, 식량증산, 민주화 투쟁…에 그들은 생사를 건 듯 달려들었다. 핏발 선 삶에의 의지 앞에 또 지금의 시련이 “난리통보다야 더하겠냐”는 악착같음 앞에 불가능들은 차례로 스러져갔다.

불가능을 넘은 기적의 원천은 그들의 절박함과 간절함이었다. 우리는 못 배워 나라도 잃고 숱하게 죽어갔지만 자식들은 세상에 눈을 뜨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먹고 싶은 생선 한 토막, 입고 싶은 옷 한 벌을 아껴가며 모든 것을 바쳤다. 밀려드는 학생들로 콩나물 교실도 모자라 가건물에서 거리에서 공부해야 했다. 밖의 소식에 목말라 신문 발행은 급증했고 엄정한 논조는 공동체의 방향 제시에 푯대 역할을 수행했다. 절망을 위로받으려는 산송장들의 몰려듦으로 교회·성당·사찰은 넘쳐났다, 신문이 ‘지금’의 문제를 다룬다면, 학교는 ‘자식과 미래’의 문제이며, 교회·사찰·성당은 ‘구원과 영원’의 문제였다. 50~60년대 동안, 유사기능을 갖는 교육·언론·종교의 폭발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에 앞선 영혼과 정신의 기적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그들 반만큼의 눈물과 희생이 있는가? 교회·사찰·성당이 핍진한 영혼들의 안식처 역할을 수행하고, 교육이 자식과 미래를 감당하고, 신문·방송이 푯대 역할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 모든 영역에서 중심을 맡고 있는 70~80, 486세대에게 묻고 싶은 자성이다. 우리는 지금 다음 세대, 다음 공동체의 평화, 평안, 행복을 위한 진정성, 희생의지, 간절함이 있는가? 이제 우린 민주화의 기여보다 더 클지도 모를 우리 세대의 반인간화의 오류를 하나하나 짚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

선진화·G20을 자랑하며 늙고 병든 참전용사에게 고작 한 달 9만원을 지급하고, 한 많은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기구(예;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념의 잣대로 문을 닫고, 매해 넘쳐나는 쌀의 처분 및 보관비 걱정을 하면서도 가난한 형제와 나라에 지원할 방법은 찾지 않고, 외국의 원조로 발전했음에도 경제발전을 자랑할 줄만 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의 해외원조를 기록하고… 한 세대의 오만의 대가는 다음 세대가 혹독하게 치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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