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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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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부양도 부동산도 기대하기 어렵게 된 마당에 바라볼 건 연금인데, 우리나라 연금제도가 시원찮은 점이 많다. 선진국에서는 절대다수 노인이 연금으로 안정된 노후생활을 꾸리게 되어 노인 빈곤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많은 서유럽 국가에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노령은 곧 빈곤을 의미하였지만, 연금제도가 자리를 잡은 1980년대 이후가 되면 노인은 젊은 근로세대에 못지않은 경제적 안정을 얻게 되었다.
연금제도는 현대사회의 지혜가 모인 발명품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연금이 세계사의 무대에 나타나게 된 데에는 독일의 노동조합운동이나 영국의 사회개혁세력이 큰 구실을 하였지만, 전 사회구성원을 아우르는 굳건한 합의가 없었다면 연금이 이처럼 대다수 나라로 퍼지고 뿌리를 내리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일하는 젊은 시절에는 보험료를 내고 은퇴 후에는 연금을 받는 제도에 대해 대다수 시민은 매우 공평하다고 받아들인다. 모든 시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함으로써, 은퇴 대책을 세우지 못한 시민들이 겪게 될 노후빈곤을 미리 막겠다는 슬기도 보인다.
연금제도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자. 무연금 상태로 노후를 맞는 시민이 겪을 궁핍과 고통은 사회적 재앙이 될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부 재정을 투여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에 대해 막대한 정부재정을 들여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함으로써 미숙한 국민연금 제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유럽의 일부 나라 예를 들어 과도한 연금급여로 인한 재정 파탄을 걱정하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과소한 연금이 빚는 문제가 더 절실한 고민거리인 것이다.
국민연금이 출범한 지 20년이 지났다. 노령연금 수급자가 230만명을 넘었지만, 연금을 받지 못하는 노인이 너무 많다. 액수도 적어 전체 노인 소득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8%에 불과하다. 더욱이 전국민이 연금 가입대상이 된 지도 10여년이 되었지만, 실직 등의 사유를 들어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저소득층이 가입자의 3분의 1이나 된다. 특별한 대책 없이는, 노후를 맞이할 때 이들은 무연금 빈곤층이 되기 쉽다. 연금 미가입자가 많은 데에는 여러 사정이 있지만, 국민연금 제도의 결함도 중요한 몫을 한다. 선진국들과는 달리 우리 연금제도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 없이 근로자와 기업주가 내는 보험료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가입자가 대기업의 안정된 근로자 등 중산층 위주로 이루어졌다. 수입이 들쭉날쭉이어서 당장 살기가 어렵고 고용주의 보험료 지원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에게 연금 가입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2007년 지난 정부는 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 급여를 낮추는 법 개정을 하였다. 다음 순서는 미가입자의 연금 가입을 지원하는 제도 개선을 통해 명실상부한 전국민연금 시대를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정 법안은 국회에서 2008년부터 위원회를 설치하여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장기 전망 위에서 연금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을 하도록 하는 규정도 담고 있다. 그러나 2년을 넘긴 지금까지 국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노후대책을 마련하는 일마저 직무유기하고 있는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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