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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30 21:10 수정 : 2010.07.30 21:10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남아공월드컵은 유난히 오심이 많았다. 그것도 승패에 결정적인 오심이 많아, 비디오 판독 얘기까지 나왔다. 이번 월드컵에 오심이 많았던 건 지나치게 유능해진 카메라 때문이다. 중계에 사용한 초고속 카메라는 1초에 2700장을 찍어, 날아가는 총알도 보여줄 수 있다. 경기당 32대의 카메라와 200명의 중계인력이 동원됐다니 심판진의 육안으로는 경쟁이 불가능한 중계시스템이다. 그럼에도 현행 규정은 주심의 판단을 최종결정으로 인정한다. 항의하면 경고만 받는다. 규칙이 있지만 적용은 철저하게 주심의 권한인 셈이다.

정치에 비유하면, 법이 있지만 적용은 정권이나 사법부 마음대로이며, 이의제기를 하면 처벌을 받는 꼴이다. 정치상황이라면 평균적인 시민의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영상기술이 열악했던 과거에는 시비를 가릴 방법이 없어 그렇다 쳐도, 시청자까지 실시간 오심 판단이 가능한 지금은 뭔가 오심 견제장치가 있어야 될 법하다. 그런데 왜 국제축구연맹(FIFA)은 그간의 오심 논란에 귀를 닫고 있었을까? 과연 피파는 비디오 판독을 수용할 의사가 있는 것일까?

축구는 매체로 중계되는 상업스포츠 중에서 가장 격렬한 경기이다. 치열한 몸싸움과 공의 변화무쌍한 흐름이 관전의 묘미이다. 경기의 규칙은 공격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방향으로 변화해 왔고,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몸싸움에는 점점 관대해졌다. 이런 변화는 축구선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중계기술이 격렬한 질감을 잡아내기 위해 더 가까이 더 천천히 더 많은 선수들의 동작을 잡아내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건 당연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중계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 것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중계료와 관련이 있다. 피파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월드컵의 상업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중계의 질을 높이니 오심 시비가 터진다. 오심은 비디오 판독으로 간단히 해결된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면 몸싸움은 줄고 경기의 흐름은 단절된다. 열광의 도가니가 돼야 할 월드컵이 식은 죽사발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피파는 2009년 1억4700만유로의 수익을 냈고, 누적 보유자산이 7억9500만유로에 달하는 최고 부자 스포츠연맹이다. 2014년 월드컵도 이미 6개 기업이 공식 파트너로 제휴협약을 체결하는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기업 홍보의 장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월드컵 중계를 독점하려는 방송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중계로 인한 방송사의 이득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이런 추세라면 피파-다국적기업-방송사가 주도하는 월드컵의 미래는 탄탄대로다. 피파의 입장에서 ‘주심 독재’는 장밋빛 미래에 필수적이다.

아마 앞으로도 경기를 시청하면서 오심을 알 수 있고, 언론이 오심임을 알려주고, 오심 당사자가 인정하고 사과하면서도 ‘주심 독재’가 유지되는 어색한 풍경이 월드컵의 일상이 될 것이다. 피파는 ‘주심도 인간이다’라고 실수에 대한 관대함을 호소할 것이다. 관중은 ‘그까짓 오심’이라고 호방함으로 화답할 것이다. 피파의 돈벌이 욕심과 관중의 쾌락욕구가 공명하는 축제의 함성이 지속될 것이다. 윈윈게임이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월드컵에서 추론하는 스포츠정신은 아무래도 4차원이 될 것 같다. 지능적으로 반칙하고 심판에게 들키지 않는 전략적 자세! 규칙보다는 심판을 존중하는 정치적 태도! 오심이 분명한데도 다들 침묵할 때는 대의에 따르는 협동정신! 그리고 이 모든 부조리의 뒤에는 역시 돈의 무서운 힘이 있다는 경제관념까지. 축구는 이제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어찌됐건 아이들이 월드컵에서 배운 스포츠정신을 현실에 적용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비록 한국 정치의 주심이 월드컵의 주심과 경기 운영 방식이 너무나 닮았지만 말이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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