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02 22:54
수정 : 2010.08.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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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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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한국에도 꽤 알려졌지만, 브라질에 쿠리치바라는 도시가 있다. 원래 그다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아니었던 인구 300만의 이 도시는 지난 수십년간 철저히 친환경적 도시계획을 실천해왔다. 그 결과 유엔을 비롯한 많은 국제기관과 전문가들에 의해 모범적인 녹색도시로 주목을 받아왔다. 현재 이 도시에는 수많은 공원과 숲이 조성되어 있다. 일인당 녹지면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시민들은 대부분 평생 여기서 살기를 원하고, 관광객들은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다.
오늘날 쿠리치바를 언급할 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도시 전역을 극히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버스 중심 교통망이다. 쿠리치바의 도시계획가들은 현대의 대도시들이 가장 쉽게 걸려드는 유혹, 즉 지하철 중심 대중교통망 건설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 대신 그들은 기존의 도로를 정비하여, 버스의 대형화 및 정거장의 독특한 설계를 통해서 환경파괴와 막대한 재정지출을 강요하는 지하철 없이도 매우 쾌적하고 효율적인 대중교통 체계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리하여 쿠리치바는 일상적인 대중교통 이용률이 80%가 넘고, 대기오염이 가장 낮은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쿠리치바가 세계적인 녹색도시로 변모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70년대 초 한 건축가 출신의 시장 취임이었다. 당시까지도 쿠리치바는 빈곤과 실업의 만연, 극심한 교통지옥, 살벌한 환경 등 온갖 낯익은 제3세계 도시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새 시장이 해결해야 할 가장 긴급한 문제는 50만명이 거주하는 판자촌의 쓰레기 처리였다. 판자촌들은 좁고 구불구불한 미로로 연결되어 청소차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골목에 마구 버려지고 쌓인 쓰레기는 쥐들의 천국이었고 온갖 질병을 퍼뜨리는 온상이었다. 이런 경우 도시 행정가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은 ‘복지’ 프로그램이거나 재개발이다. 그러나 돈도 없었지만, 이 도시의 새 시장에게는 그런 상투적인 방식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는 쓰레기를 지정된 봉투에 넣어 가지고 오는 판자촌 주민에게 버스 토큰을 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퇴비화가 가능한 유기물 쓰레기에 대해서는 식품교환권을 주었다. 그러자 놀라운 속도로 판자촌은 청결해졌고, 아이들마저 쓰레기의 다양한 분류법을 재빨리 익혔다. 빈민가 사람들의 삶은 토큰과 교환권 덕분에 호전되기 시작했고, 시당국은 쓰레기 재활용으로 얻은 수입을 다시 토큰이나 교환권을 발행하는 데 썼다. 이윽고 경제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시내 전역에서 통용되는 토큰과 교환권은 버스를 타거나 음식을 사먹는 데뿐만 아니라, 웬만한 점포에서 돈처럼 사용되었고, 그 결과 서민들의 구매력이 크게 향상되었던 것이다.
따져보면, 화폐란 별게 아니다. 화폐는 본래 사람들 사이의 거래를 원활하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화폐의 성립 여부는 공동체 성원 간의 합의 혹은 신뢰에 달려 있다. 사람들이 인정하기만 하면 조개껍질이든 도토리든 다 돈이 될 수 있다. 쿠리치바의 성공은 바로 여기에 단초가 있었다. 시당국이 인정하는 이상, 토큰과 교환권은 도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화폐로 기능하였고, 그럼으로써 그것은 결국 쿠리치바 녹색화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쿠리치바의 경우는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가 없다고 해서 지방정부 혹은 지자체가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는 모처럼 한국에서도 실질적인 지역자치가 실현되고, 지역경제와 문화가 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재정의 열악함 때문에 계속해서 중앙정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중앙정부의 부조리한 시책에도 굴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한, 모든 것은 허사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명석한 판단력과 창의적인 생각이다. 지자체들은 독자적인 돈, 즉 지역화폐를 만들어 쓰면 되는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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