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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10 18:05 수정 : 2010.08.10 18:05

김별아 소설가

아이들의 학교가 방학을 하면 엄마들의 극기훈련소는 개학을 한다. 해가 중천까지 솟도록 늦잠을 자는 아이를 두들겨 깨우느라 난장판을 벌이고, 삼시 세 끼 먹을거리를 대느라 손에 물 마를 날이 없고, 자력으로 헤어나지 못하는 컴퓨터게임을 중단시키고 다붙어 쌈박질하는 형제자매를 떼놓으려 목청을 높이다 성대 결절이 될 지경에, 체력과 인내심과 자제력의 과목에서 낙제를 할 형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쫓아내다시피 보낼 학원조차 대안으로 갖지 못한 대안학교의 방학은 더욱 길기만 하다. 말이 좋아 ‘자기 주도 학습’이지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조차 알 수 없어 갈팡질팡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겐 자유가 곧 방종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암만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폐인 꼴로 널브러져 세월아 네월아 농땡이 치는 녀석을 보면 세상 부모의 숙명인 잔소리가 절로 늘어진다. 그래서 농반진반으로 말하곤 한다. 대안학교의 선생님과 학부모는 대안적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일 뿐이라고.

그저 아이들인 그들은 대안학교의 장점이자 허점인 자율성을 활용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더구나 올해 학교가 내세운 방침인 ‘호연지기’에 역행해 ‘에너지의 내면화’를 모토로 삼은 우리의 중학교 2학년들은 분출하는 리비도를 억제하지 못해 여기저기서 좌충우돌이다. 말대꾸는 필수요 무력충돌은 기본이요 어른들의 눈을 피해 어른들을 흉내 내는 일탈은 선택이다. 성실히 과제를 제출하고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쪽 팔리고’, 체험이다 기행이다 하여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도 ‘모양 빠진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고심 끝에 부모들이 여름방학 프로그램으로 내놓은 것이 ‘록음악의 세계’, ‘아이스크림 만들기’, ‘목공 체험’ 등이었다. 우리 딴엔 부담 없이 재미있게 참가하기만 하면 될 듯한 것들이었지만 이조차 동상이몽인지 참가율이 기대에 썩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때, 아무리 ‘가르침을 놓는’ 방학이라지만 그래도 뭔가 깨닫고 얻는 교육적 효과가 있어야 마땅할 듯한 강박과 엄숙주의에 사로잡힌 부모들을 제대로 한 수 가르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철학 과목을 담당하는 2학년 팀장 유봉인 선생님이 계획한 ‘맛집 기행’이었다. 세 차례에 걸쳐 닭요리, 냉면, 감자탕을 맛있게 하기로 소문난 식당들을 탐방하는 일정인데, 식재료와 양념의 관계에 대해 논할 것이 아닌 바에야 입만 달고 가면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흥행에는 역시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 최고라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확인시키듯 이 계획이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학년 전체 인원 60명 중 연인원 50명에 달하는 참가자를 기록한 이 프로그램은 교육적 효과는 둘째 치고 오로지 ‘함께한다’는 목표가 빚어낸 놀라운 성공이었다. 아니, 도무지 그 제각각인 비위를 맞출 수 없을 것만 같던 주변인들이 ‘맛’을 중심으로 속속 모여든 것보다 더 큰 교육적 효과가 어디 있는가? 방학 내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친구들을 식당에서 만났다며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며 경직되고 구태의연한 내 생각을 새삼 반성했다. 식도락가인 유봉인 선생님은 음식 맛도 맛이지만 삶과 사랑의 맛을 아는 분이다. 교사가 되기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던 선생님은 그 자신이 고문피해자이기에 무엇보다 폭력을 경계하신다. 선생님의 표정은 언제나 평화롭다. 지각을 하는 아이들에겐 벌로 비타민C를 먹여주신다. 선생님보다 더 큰 덩치들이 덜 여문 마음을 다쳐 쩔쩔맬 때 양팔을 벌려 그들을 안아주신다. 뜻밖의 ‘스킨십’에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 밀쳐내던 아이들도 학기말 즈음엔 슬그머니 그 어깨를 감싸 안는다니, 사랑은 그토록 강하다. 달콤하고 매콤한 닭볶음탕으로 배를 불린 아이가 마루에 누워 늘어지게 부르는 노래처럼, 사랑은 맛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거나 물릴 리 없다.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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