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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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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래전부터 진보 정치의 부활을 꿈꾸는 세력들에게 이 단체의 활동(www.nanum.com)을 표절하라고 조언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2년 전 나눔문화가 촛불 소녀 아이콘을 만들어내어 촛불 시민들 사이에서 돌풍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난 그때 드디어 본격적인 표절의 시대가 오겠구나 예감했는데 그건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다시 최근 김예슬 연구원이 의미심장한 돌풍(대학 거부 선언)을 일으켰는데 시민들 속에서의 심상치 않은 반응과 달리 다시 그들은 미지근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매력적인 진보적 생활 정치의 모델이 펄떡이며 성장하는데 거기에 깊이 주목하지 않는 이들이 자기들끼리 통합하고 40대 브랜드를 내세우면 잘될까? 그들은 정말 진보적이긴 한 걸까?
난 나눔문화를 알게 된 이후부터 진보단체의 진정한 수준을 평가하는 핵심 테스트 방법을 배웠다. 그건 그 조직을 방문했을 때 사람을 맞이하는 태도를 보면 된다. 나눔문화는 긴 여행에서 돌아온 가족을 맞이하듯 진정성에서 우러나는 따듯한 태도로 모두를 대한다.
인간주의적 철학의 진정성은 과도한 헌신성으로 나타난다. 조그만 행사 하나를 준비하는 것에서도 며칠 밤을 새워가며 방문하는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드릴 조그만 선물꾸러미를 섬세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마치 과거 크리스마스 시즌의 정성 어린 카드 만들기 시절이 생각난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그곳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즐기는 공동체여야 한다. 나눔문화의 일상은 소박한 철학이 담긴 밥상과 자연주의적 삶, 영혼을 깨어나게 하는 음악이 흐르는 명상과 주옥같은 강연, 그 이후 우정 어린 뒤풀이가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그러한 공동체에서 성장하는 대학생 간사들은 모두 마치 성숙한 교육자 같다. 난 그곳에 차를 몰고 중학생 딸을 ‘모시고’ 갔다가 대학생 간사에게 자식을 의존적으로 키운다고 혼쭐이 났다. 세상에, 명색이 대학교수 경력 7년인데 학생에게 야단을 맞다니…. 얼마 전에는 대학 거부를 선언한 김예슬 연구원이 책을 통해 나와 같은 대학교수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죽비를 들었다. 진보 정당은 그런 공동체와 간사들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이러한 단단한 삶의 지반 위에서의 나눔문화의 지구적 평화 운동은 깊이 있는 울림을 가진다. 그저 번지르르한 진보 담론이 아니라 치열한 실천의 용광로가 벼려 낸 내실 있는 가치이다. 오랫동안 박노해 시인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도대체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중동의 사선을 건너며 지구적 연대와 나눔의 공동체를 만들어왔다. 이런 치열한 노력 없이 그저 몇몇 지식인들의 글을 조합한 새 진보 담론으로 2012년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욕심이 과한 게 아닐까?
현재 화두가 되는 진보 부활의 해법은 간단하다. 정말 이를 간절히 원한다면 나눔문화와 같은 실험을 철저히 표절하고 혁신해서 더 매력적인 삶이 숨 쉬는 정당을 만들면 된다. 난 재미없는 정치인 행사와 달리 나눔문화와 스티비 원더 콘서트 사이에서는 어디를 갈지 잠시 고민한다. 원래 정치란 재미가 없고 칙칙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천만에. 오바마의 선거 캠페인은 가수 비욘세의 콘서트와 비교해도 미국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선택의 고민을 제공한다. 제발 한국의 ‘진보개혁정당’들은 우리에게 어려운 선택의 고민거리를 던져주셨으면 한다. 아니면 가슴 뛰게 하는 단어인 진보라는 말을 쓰지 말든지.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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