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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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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소득비례 방식이다. 소득비례연금에서는 보험료를 내야 연금을 받을 수 있고, 보험료를 많이 낼수록 연금 액수도 늘어난다. 그래서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저소득층은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하는 무연금자가 되기 쉽다. 선진국가들은 노인인구는 적고 근로세대는 완전고용을 누리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호시절에 전국민이 참여하는 연금을 이루었다. 우리나라는 1988년 때늦게 국민연금을 시작하였는데, 1990년대를 지나며 경제가 어렵고 고용 사정이 악화되니 연금 사각지대가 아직 넓다.
게다가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니 장래 늘어날 재정부담 걱정까지 하게 되었다. 급기야 정부는 2007년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낮추는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평균소득 20% 수준의 연금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초연금 제도를 주장하며, 연금재정의 안정화가 다급하던 정부를 압박하였다. 정부와 집권 여당은 재정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에 반대하였지만, 기초노령연금이라는 타협안으로 연금개혁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기초노령연금에서는 당장에는 노인의 하위소득자 70%에게 연금가입자 평균소득 5%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고, 점진적으로 소득의 10%까지 급여를 올리도록 되어 있다.
한나라당은 2007년 말 대통령선거까지 기초연금 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집권 이후에는 뚜렷한 계획을 밝히고 있지 않다. 민주당은 대통령선거부터 기초연금 실시로 입장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권력 잡기 전과 후에 180도 말이 달라지는 정치가들에 비해, 정부 관료는 비교적 일관되게 기초연금에 반대하는 기조를 보였다. 재원을 조달하고 제도를 운영하는 직접적인 책임을 지니 판단이 현실적인 탓이다. 사실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유지하려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세금이 필요하다. 노인 인구는 15년 뒤에는 1000만명이 되어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30년이 지나면 1500만명이 되는데, 이들 모두에게 매월 이삼십만원의 연금을 준다고 상상해보자. 이러한 재정부담 때문에 기초연금을 60년 동안 유지하던 스웨덴도 빈곤 노인으로 급여 대상을 제한하는 개혁을 하게 되었다.
기초연금으로 보편연금을 이루던 복지국가 전성시대의 전략은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연금은 그간 가꿔온 국민연금을 더 잘 키워서 이루어야 한다. 저소득 근로세대에 대해서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하여 연금 참가를 늘려야 한다. 국민연금은 소득비례식 연금이지만 저소득층을 후하게 대우하는 장점이 있다. 스웨덴에서처럼 빈곤한 연금수급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최저연금을 보장하도록 개선한다면 기초연금에 버금가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남는 문제는 당장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세대의 빈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기초노령연금을 개혁하여 대상을 빈곤 노인으로 좁히고 급여 수준을 대폭 올리는 것도 해볼 만하다. 노인빈곤 없는 세상이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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