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30 21:20
수정 : 2010.08.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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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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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2000년 동안 독립정체를 유지해온 국가가 강제병합으로 멸망했다. 이웃나라를 불법병합한 일본 군국전체주의의 평화파괴, 주권유린, 범죄행위에 대한 비판과 사과·배상 요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게다가 한일병합은 원인무효이며, 평화와 인도에 반하는 범죄는 시효가 없는 ‘영구범죄’이다.
그러나 망국 상황의 핵심 요체를 놓쳐선 안 된다. 무엇보다 조선은 ‘하루아침에 붕괴된 것’이 아니라 ‘서서히 멸망해갔다’. 조선은 길게는 아편전쟁 이후 두 세대, 짧게는 개항 이후 한 세대가 경과한 후 멸망했다. 두 세대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개인이건 공동체건 흥망의 단초는 내부에서 발단된다. 발전이건 멸망이건 안의 요소가 없다면 밖은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자국 이익을 위해 달려드는 열강 앞에서 내부 쟁투는 공동체 해체로 연결된다. 즉 당시 친일·친청·친러·친미파의 갈등은 국제연대를 위한 외교노선 갈등을 넘어, 명백히 내부 권력 장악을 위한 외세 동원과 직결되어 있었다. 고종-흥선대원군-명성황후-민씨 척족의 반동적 반공동체적 대응 역시 같다. 그들은 아래와 위의 개혁요구를 수용하여 국가역량으로 결집하기엔 너무도 파당적이었다. 이들이 ‘내부’ 개혁요구를 수용·실천하였다면, 아니 적어도 자파보다는 왕조를, 왕조보다는 국가를 위해 행동했다면 조선의 ‘대외’ 운명은 달라졌다. 그러나 국가보다 왕조, 왕조보다 자파를 위해 망국에 이르기까지 다퉜다. 국가와 국민을 거의 장악하였음에도 당파투쟁·왕권타도·권력쟁취보다는 공동체 수호에 진력했던 이순신과는 정반대였다. 이순신이 안과 밖에서 이중의 중심을 잡아 한·중·일 3국 정족체제를 구축하여 300년 동양평화를 정초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망국 100년을 맞아 학생들과 백두산 천지-용정(룽징)-길림(지린)-도문(투먼) 지역을 다녀왔다. 통일·평화·인간 한국에의 비전을 함께 나누고, 각자의 소명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이상설·이회영·안중근·김좌진·윤동주·문익환의 삶을 되새기며 선구자·서시·신흥무관학교·동양평화·대성학교 등이 갖는 의미를 함께 묵상하였다. 이들의 꿈은 무엇이며, 이들을 결단하게 만든 공동체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이회영·이시영의 고결한 결단과 만주 이주와 신흥무관학교 설립, 동양평화를 향한 안중근의 결기와 사격연마, 김좌진의 처절한 청산리전투, 윤동주의 순수저항과 요절, 평생을 소명 속에 산 문익환, 이름없이 죽어간 이역의 민초들…. 필자의 설명을 들으며 몇몇 학생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지금 이 공동체의 근본문제를 앞서 깨닫고 결단할 ‘선구자’는 누구인가? 고난이 당시보다 작기에 상황이 만들어줄 영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근본문제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개인의 결단은 항상 요구된다. 청문회가 보여준 국가 상류층의 전면적인 도덕적 파탄, 사회윤리와 공공성의 붕괴, 대부분의 주요 비인간화 지표 세계 1위가 증명하는 인간적 가치의 총체적 와해, 정의·사랑·관용·나눔과 같은 보편가치의 소멸 등을 보며 우리가 좋은 인간 만들기와 좋은 시민 만들기, 따라서 좋은 공동체 만들기에 실패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물질발달을 이룬 한국 사회는 지금 돈, 힘, 편(파당·이념)을 위한 질주와 쟁투는 있어도 인간공동체로서의 공통의 존재목적과 가치는 상실하였다.
인류 역사는, 물질과 재화의 결핍이 아니라 사회윤리와 정신·덕성의 파탄이 국가 멸망의 근원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교육과 시민교육에 달려 있음을 증명한다. 정의로우면서도 따뜻한 인간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시민과 동량을 양성하고 한국 사회를 전면 개조할, 인간한국을 향한 제2의 신흥무관학교를 세우자. 인간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 오늘의 이회영이 되어 뜻과 정성과 지식을 모아, 인간정신과 사회가치를 실천하고 가르칠, 그리하여 좋은 공동체를 만들, 미래 1000년의 인간한국·품격한국을 설계할 인문교육기관과 공공리더 양성학교를 만들자. 망국 100년에 미래 1000년의 희망을 말하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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