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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04 17:03 수정 : 2010.09.04 17:03

한정숙 서울대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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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조선의 몰락과 일제 강점의 역사를 돌아보는 학술활동이 활발하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도 자국의 강압적 조선 지배에 대한 반성의 뜻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런 한편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일부 논자들의 목소리도 더 높아진 것 같다. 최근 한 원로 경제사학자는 일제의 한국 강점을 두고 “조선을 일본으로 개방하는 과정”이라 칭하며 긍정적으로 평하기도 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바탕을 둔 화려한 수사법이지만, 어느 정도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조국 근대화” 구호 이래 근대화라는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근대화라는 말 자체에는 그 과정이 내포한 인간비극의 어두운 그림자도 어려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배링턴 무어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에서 시민민주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을 각각 상이한 유형의 근대화 경로라고 파악하였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파시즘적-군국주의적 근대화 경로는 사회주의 경로보다 더 일찍 파탄을 겪었다. 파시즘 근대화의 주도자들은 민주주의 억압과 군국주의를 통해 전쟁의 길로 나아갔다가 참패했고 자국을 전범국가로 만든 것이다. 독일인들은 나치의 지배가 파국에 이른 뒤 꽤 잘 작동하는 의회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독일인들이 나치 체제의 근대성에 대해 논하는 일은 많지만, 나치 체제 덕분에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일본 군국주의는 나치 체제의 동양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변화를 굳이 근대화 과정으로 보자면 그것은 파시즘 근대화에 종속되고 파시즘 근대화보다 더 열악한 ‘파시즘적 식민지적 근대화’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극적이건 덜 비극적이건 엄밀한 의미에서 한 사회의 근대화를 말하려면 그것이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포함하는 과정임을 이야기해야 한다. 정치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근대적 주체가 이루는 변화 과정이 근대화 과정이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자들이 조선인들을 맡아 관리해주다가 정치적으로 성숙시켜 독립시켜 주려고 했을까? 이토 히로부미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일본의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기는 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정치적 자기결정권을 가지지 못한 식민지인들은 종주국의 전쟁에 말려들어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종주국이 패하자 그 대신 분단되었다. 제국주의 지배가 가져온 근대화의 이점을 논하려면 한반도 전체의 상황을 논해야 한다. 분단과 그에 이어진 전쟁, 냉전적 대립, 남북한에서의 독재(남한은 결국 자력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와 북한의 극심한 궁핍, 우리가 치르고 있는 분단비용,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에 식민지배의 공과를 논할 일이다.

미국의 지배를 받은 필리핀과 영국의 지배를 받은 버마(미얀마), 일본의 지배를 받은 한국은 현재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꽤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제의 조선 지배가 미국식 혹은 영국식 제국주의 지배보다 더 합리적이어서 이런 차이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는 힘들 것이다. 과거 식민 지배를 받은 사회들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 지배가 가져다준 이익이 아니라, 한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전통 속에서 쌓여온 총체적 역량과 사회 구성원들의 현재의 가치관, 그리고 그들이 각각의 단계마다 내리는 결정이다.

군주주권국이었던 조선의 집권층은 근대로의 전환 시기에 들어 내부 개혁을 이루는 데 실패한 탓에 나라 전체가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공공성에 바탕을 둔 시민권력이 확립된 사회에서는 외부집단에 의한 강압적 지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좀더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정숙 서울대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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